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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2024. 10. 13. 졸업식날 아이보다 부모들이 펑펑 우는 곳,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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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4-10-16 14:47 조회1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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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글와글 공동육아] 고립 말고 같이... 너와 나 함께 단단해지는 육아로

 

 

[기자말]

지금, 여기 서울 한복판에서 '공동육아'라는 이름으로, 서로 돌봄하는 어린이집 협동조합이 있습니다. 바로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참나무 어린이집입니다. 참나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키운 부모들이 공동육아의 살이와 공동체의 복원을 이야기 하려 합니다. 이 글은 참나무어린이집의 부모 조합원, 치즈가 쓴 글입니다. 치즈(최인성)7세방 엄마입니다.-기자말

 

외로움.

 

'핵인싸'까지는 아니었지만, 확신의 외향형이었던 저와는 거리가 먼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로움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건 두 번의 출산과 육아를 경험하면서부터였어요. 빵 부스러기처럼 무언가 조금씩 잃는 느낌이 자주 들었고, 점차 ''라는 존재가 아득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새로 부여된 '기혼 유자녀 여성'이라는 역할로 사는 삶은 희망찼던 기대와 달리 전보다 더 부대꼈고, 사회가 정해놓은 '중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지는듯한 불안에 "해 질 녘이면 가슴이 ''하고 내려앉"고는 했습니다. 사회로부터 본격적으로 소외되며 외로움에 고여있을 때, 엄마가 된 것을 후회한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다 팬데믹이 닥쳤습니다. 이동과 교류에 제한이 많아졌고 활동 반경이 좁아졌습니다. 그때 전 다시 한번 제가 외로운 양육자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주변에 아무도 없었거든요. 5년 전 우리 가족이 새 터전으로 삼은 지금 동네는 아무런 연고가 없습니다. 저와 배우자 모두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동네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 여력도 없었죠.

 

첫째 아이를 통해 아주 가끔 동네 엄마들과 인사를 나누긴 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집에 갇혀 네 식구가 복닥복닥하는 생활이 길어지면서, 아이들도 부모인 우리도 점점 지쳐갔습니다. 그러다 결국 '온 마을이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공동육아 어린이집 문을 두드렸고 둘째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외로워서 찾은 공동육아의 고립될 수 없는 서로 돌봄

 

공동육아 어린이집 운영 방식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같이 놀 동네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만 컸죠.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이루는 더 많은 것들이 있었지만 생소한 운영 방식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집 생활에 본격적으로 몸을 담고서야 이곳에서 외로움을 느끼지 못할 다른 이유들을 몸소 깨우쳤습니다. 이곳은 절대 고립될 수 없는 부모들의 촘촘한 서로 돌봄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는 걸요.

 

우리 동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말그대로 '공동육아'를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부모와 선생님이 힘을 모아 어린이와 함께 사는 어린이집을 운영합니다. 20년 전부터 부모들이 협동조합을 꾸려 어린이집 운영을 주도하고, 어린이 보육과 교육은 공동육아 가치에 공감하는 자격을 갖춘 선생님들이 맡고 있습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부모들이 하는 일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린이집 운영과 보육·교육 지원(사실 두 가지 일을 칼같이 나눌 수는 없습니다)입니다. 이렇게 말해서는 감이 오지 않으실 것 같아 저와 옆지기가 하는 일을 얘기해보겠습니다.

 

어린이집 운영을 위해 모든 부모들은 여러 분과 즉, 팀에 소속되어 일합니다. 지금 저희 어린이집은 문화분과, 시설분과, 홍보분과, 회계분과, 집행분과, 사협분과로 이뤄졌습니다. 저는 어린이집의 홍보 업무를 맡는 홍보분과, 옆지기는 문화분과 소속인데요.

 

재작년 저는 홍보분과장을 1년 동안 수행하며 그해 어린이집 대외 홍보, 등원 상담, 등원설명회 등을 주도했습니다. 각 분과는 한 달에 한 번 모여 어린이집 운영에 관한 의견을 나눕니다. 분과장들은 각 분과 모임 의견을 모아 운영위원장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운영위원회의를 열고 최종 의사 결정을 합니다.

 

부모들은 보육·교육 지원 활동도 전방위적으로 펼칩니다. 저희 어린이집은 만1~5세 연령에 따라 총 5개 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요. 각 방은 한 달에 한 번 방모임을 가집니다. 저와 옆지기는 서로 번갈아 가며 방모임에 참석하는데요. 담임 선생님과 부모가 모여 어린이들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눕니다.

 

어린이들이 어린이집 근처 큰 공원으로 긴 나들이를 나갈 때나 택견 수업, 이웃 마을 교류로 이동할 때도 부모들이 나서 차량을 운행합니다. 유연하게 일하는 저도 적극적으로 차량 운행에 참여합니다. 매일 밤 어린이집 청소를 해주시는 선생님도 계시지만 세 가정이 한 조를 이뤄 주말 청소를, 상하반기에 한 번씩 모두 모여 대청소도 합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운영을 위해 부모들이 하는 일은 금전적 대가 없는 돌봄에 가깝습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여러 모임은 물론 어린이집 운영 업무와 보육교육 지원 활동, 청소 등은 수시로 물리적·심리적 품을 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협동조합, 어린이집이라는 형태와 체계가 있지만 모두의 적극적인 돌봄까지 갖춰야 비로소 공동육아는 완전해집니다. 돌봄을 외주화하려고만 하는 정부 정책과 반대로 우리는 돌봄의 소비자가 아닌 주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집 어린이를 위해 각자 맡은 일을 했을 뿐인데 어느새 서로를 돌보고 있었죠.

 

이렇게 촘촘한 서로 돌봄으로 운영되는 공동육아는 고립되려야 고립될 수 없는 구조입니다. 엊그제 만난 것 같은데 조금만 지나면 또 모임이 다가오고 잠잠한가 싶으면 "똑똑, 도움이 필요합니다" 메시지가 울립니다. 그렇게 얼굴을 비추면 서로의 안부를 묻고 어린이집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불쑥 나와 너의 이야기가 오가곤 하고요. 그러는 사이 외로움을 느낄 틈은 메워집니다.

 

 

동료도 아닌데 같이 일하고, 친구도 아닌데 마음 맞는 '공동육아러'

 

4년 전, 처음 어린이집 분과모임에 참석했을 때 어색했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랜만에 일로 만난 동료도, 학창 시절 친구도 아닌 어른들과 마주한 자리였습니다. 어린이들도 없이 예닐곱의 엄마, 아빠가 동그랗게 모여 앉아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는 자리, 상상만 해도 어색하지 않으신가요?

 

다행히 그날의 모임은 잘(?) 끝났습니다. 어린이집 운영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갑자기 양육자의 고민을 털어놨다가 또 갑자기 회사일에 대한 불평불만을 터트렸다가 재밌는 일이 있었다며 썰렁한 유머를 주고받으면서도요. 널뛰는 대화 속에서 '여긴 어디, 나는 누구'라며 의아해하면서도 즐거웠던 기억입니다.

 

회의를 마치고도 맥주캔을 기울이며 2-3시간 더 얘기를 나눴습니다. 배보다 배꼽이 큰 모임이었죠. 함께 밤길을 걸어 귀가하던 이웃 엄마, 아빠에게 "꼭 대학 때로 다시 돌아온 것 같아요"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참 오랜만에, 다 큰 어른들과, 실리를 따지지 않고 마냥 즐겁게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었습니다.

 

재작년 홍보분과장을 맡아 운영위원이 됐을 때는 '왜 이리 일이 많냐'고 자주 불평했습니다. 이직한 회사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집 어린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집 밖에서 돈도 안 되는 일로 왜 이러고 있나 싶을 때가 왕왕 있었죠.

 

그런데 돌아보면 그때 제 불평불만에 누구 하나 쓴소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럴 수 있다'며 공감해 주었고 '무엇을 도와줄까'라며 일을 덜어주었죠. 덕분에 힘들지 않았다고 포장할 수는 없지만, 덕분에 무사히 건너온 것이 사실입니다. 1년의 임기를 마치자 다른 이가 나의 부담을 짊어졌고, 올해엔 또 다른 이가 배턴을 이어받았습니다. 저는 다시 옆에 서서 그들이 너무 지쳐 쓰러지지 않게 조금이나마 짐을 나눠집니다.

 

회사처럼 이익을 내야 하는 목표를 공유한 사이도 아니고,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서로의 구석구석을 아는 사이도 아닙니다. 힘들고 하기 싫으면 어린이집을 탈퇴하고 돌아서면 그만인 사이이기도 하죠.

 

어린이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공동체 때문에 품을 낸다는 것은 당장 성과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성과를 위해 현재의 시간과 체력을 투자하는 어리석은 짓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한 줌 공동육아러'인 저는 오늘도 서로에게 '서로'가 되어주기로, 곁을 지켜주기로 마음먹습니다.

 

어린이집 일에 즐겁기도 힘겹기도 하면서 약 3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이 많은 모임과 일의 의미를 알게 됐습니다.

 

일과 육아에 치여 살다가 어린이집 일을 이유로 홀로 집 밖을 나서는 순간이, 이렇게 모인 이들과 맥주 한 잔 하며 보낸 숱한 밤(?)들이, 그저 ''만은 아니었던 것이죠. 그것은 위안이고, 소통이고, 관계였습니다.

 

 

공동육아 친구들이 생겼고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공동육아 4년 차에 접어드니 동네에 아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급한 일이 생겼을 때 우리집 어린이들과 함께해 줄 가족들이 생긴 것은 물론, 마음이 어려울 때면 언제든지 만나 술 한잔 기울이고 속 편히 얘기 나눌 동네 어른 친구들도 생겼습니다. 처음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찾았을 때와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입니다.

 

비슷한 양육 가치를 갖고 모였지만 각기 다른 어른과 어린이 50여 명이 모인 공동체가 늘 순조롭게 한마음 한뜻 일리 없습니다. 말 많고 탈 많은 공동체 생활에 질려 '이제 그만하고 싶다' 투덜대다가도 이 공동체가 내게 남겨준 것에 못 이기는 척 돌아앉습니다. '졸업이 코앞인데지지고 볶은 거 다 잊고 속시원히 떠나겠다!' 하다가도 결국 이 글을 쓰고 마는 것처럼요.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나면 어린이집 일을 안 해서 너무 여유롭고 좋다는 사람들과 할 게 없어 심심하다는 사람들로 나뉩니다.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고도 하고요. 저는 심심한 쪽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나가던 방모임과 분과모임에서 공동육아라는 한 줌을 지키기 위해 머리를 모으고 웃고 울었던 시간들이 그리울 테죠. 졸업식날 부모들이 어린이들보다 왜 더 펑펑 우는지,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남들 다 하는 육아가 뭐 그리 외로워서 친구 하나 사귀려고 이 생고생을 하냐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모든 것이 편리해진 시대, 효율성과 생산성에 매몰된 사회에서 저 또한 무조건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추천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조금은 느리고 불편한 그래서 느슨하고도 가까운 공동체 경험이 더 귀중하지 않은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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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출처 | 오마이뉴스 https://www.ohm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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