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기고. 베이비뉴스 2022.09.02. 어린이집 식탁에 필요한 건? 좋은 음식을 즐겁게 먹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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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2-09-05 16:57 조회397회 댓글0건본문
- 기고=김희정
- 승인 2022.09.02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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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의 정신은 '내 아이'를 맡기거나 '남의 아이'를 보호해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데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동육아를 실천하고 있는 원장, 교사, 학부모가 직접 최근 보육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공동육아의 시선'이라는 기획을 진행합니다. 이 기획은 사단법인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과 함께합니다. -편집자 주
◇ 어린이집에 들어온 냉동고
어린이집에 냉동고가 들어왔다. 2021년, 정부에서는 21인 이상 규모 어린이집의 보존식 보관에 대한 의무 규정을 두었다. 이것은 이전 50인 이상 시설에만 적용하던 규정을 확대한 내용으로 식중독 발생 시 빠른 원인 규명을 위한 조치이다. 이러한 자초지종을 담아, 수많은 냉동고가 공장을 나와 전국 각지로 흩어져, 각 어린이집의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운영진들은 커다란 부피의 냉동고를 어디에 위치하며 어느 전기 콘센트에 코드를 꽂을 것인가. 보존식을 만드는데 드는 추가적인 비용 부담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하여 시급한 회의를 했다. 고민과 결정의 끝을 이어 ‘이러한 일괄적인 보존식 의무 규정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이 맴돌았다.
만약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녀온 후, 처지면서 토하거나 복통을 호소하면 부모로서는 이유도 모른 채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이 든다. 아이가 낮에 뭘 먹었는지 식단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큰 병이 아니기를, 빨리 낫기만을 바라며 마음을 졸이게 된다.
대체로는 따뜻한 물을 마시게 하고, 배를 문질러 주며 하룻밤 옆에서 같이 고생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툭툭 털고 일어나기도 한다. 하룻밤 지나도 차도가 없으면 동네 의원을 찾기도 하고 받아온 약이 잘 들어서 괜찮아지면 ‘아이들은 아프면서 크는 거지’ 하며 안도하고 지나가지만, 가끔은 아주 심각한 상황이 되기도 한다. 탈수가 동반되어 입원하게 되기도 하고 더 심하게는 아주 드물긴 하지만 신장이 망가져 평생 어려움을 갖고 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어린이집은 집단급식이라는 측면에서 식중독이 발생했을 때의 위험성이 크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연평균 282건의 식중독이 발생하였고 그중 23%인 64건이 집단급식소의 발병으로 전체 발병자의 45%인 2593명을 차지한다.
안전에 대해 장치를 할 때는 대체로 가장 안 좋은 상황을 대비한다. 어린이집의 모든 안전장치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사고에 대한 대비이다. 어린이집에서는 모든 모서리에 보호대를 설치하고, 모든 공간에 화재경보기 설치 등 혹시 모를 만약을 대비한 장치를 하고 있다.
보존식도 마찬가지다. 대체로는 가볍게 지나가지만, 혹시 모를 가장 심각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보존식을 보관하고 이를 잘 이행하는지 지도 감독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사고가 일어난 후의 조치이지 사전 예방의 차원은 아니겠다. 보존식을 두면 만약의 사고가 일어났을 때 더 빨리 더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보존식으로 인한 신속한 조치로 더 큰 위험을 예방할 수 있을까?
나는 문득 전염병을 다룬 영화 속 장면들이 떠올랐다. 전염병에 대한 인류의 공포는 많은 블록버스터 영화들을 만들어 냈다.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에게 발생하는 원인 모를 전염병에 공포를 느끼고, 국가는 감염을 막기 위해 통제를 하며, 재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은 전염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치료제나 백신을 찾고 살아남기 위한 액션과 드라마를 선보이며, 인류를 구해낸다. 보존식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식중독 집단 감염의 원인을 알아내는 결정적인 단서로 활약할 수 있을 것인가? 궁금해져 사례를 찾아보았지만 알아낼 수 없었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말한다. 매일 많은 양의 보존식을 그릇에 담으며, 365일 돌아가는 보존식 냉동고를 보며, 아침마다 보관되었던 보존식을 버리며, 정말 이 방법밖에는 없는 것인가. 나는 이 물음에 동참한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어린이집이 매일 한 끼의 식사와 2번의 간식 분량을 음식물 쓰레기로 배출해도 괜찮은 걸까. 언제 어떻게 사용될지 모르는 보존식을 위해 날마다 투입되는 노동력, 그 많은 식재료, 전기에너지.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 식단은 죄가 없다?
‘집단급식’을 잘 관리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들이 어린이집에서 적용되어 관리되고 있다. 부실 급식을 우려해 식약처가 만든 각 지역의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는 2011년 전국 12개를 시작으로 현재 236개소가 운영 중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지역아동센터 등 어린이에게 단체급식을 제공하는 집단급식소를 대상으로 분기별 위생 및 영양을 교육하고 관리한다. 교사 교육은 물론이고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 급식지원센터는 연령별 균형 잡힌 식단과 레시피를 제공하고 있으며 식단에는 칼로리와 단백질이 표기되어 있고 알레르기 유발 식품에 대한 표시도 별도로 되어 있다.
식단 가득 빼곡한 정보를 보면서 안심이 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식단으로 우리 지역의 모든 아이들이 똑같은 식사를 한다는 사실에 좀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반면에 우리 동네에 같은 식단을 쓰는 두 개의 초등학교 급식이 학부모 모니터링단과 학생들에게 극단적으로 다른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것은 또 무슨 이유일까?
물론 급식관리지원센터의 잘 짜인 식단과 정보에 안심이 되기도 한다. 급식관리지원센터의 지원으로 보육시설의 급식이 정말 많이 좋아졌다. 유통기한 엄수라든가 주방의 청결 상태, 올바른 보관법과 올바른 세제 사용 등등 많은 것들을 새로 배우기도 하고 놓치고 있던 것들을 확인하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식단으로 우리 지역의 모든 아이가 서류상으로 매일 똑같지만, 실상은 다른 내용의 식사를 하는 아이러니에 한편으로 드는 답답한 마음을, 안전을 위한 행정시스템이라는 이해로 어쩔 수 없이 내려놓아야 하는 것일까.
어린이집의 표준보육과정이나 누리과정을 보면 개별적 놀이 지원이 강조되고 있다. 아이들의 자발적 놀이를 지원하는 게 어른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한다. 아이들의 놀이는 일상생활을 넘나든다. 그런 차원에서 먹거리 문화 또한, 이러한 개별적 지원에 포함되어야 하는 건 아닐까.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일상이었던 상호작용의 식문화는 이렇다. 소꿉놀이로 비빔밥을 만들던 아이들이 주방으로 쪼르르 달려가 급식으로 비빔밥을 먹고 싶다고 요구하기도 하고, 교사가 어딘가에서 먹어보고 맛있던 걸 어린이집 아이들과 함께 먹고 싶을 때도 있다. 주방의 영양교사 또한 아이들이 맛있고 건강하게 먹을 식단을 고민하며 보람과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매년 김장철에는 양육자들이 모여 일 년 내내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 김장을 함께 하며 뿌듯함을 느낀다.
이렇게 어린이집 안의 모든 구성원의 욕구와 바람을 담고 상호작용하고 고민하며 식단과 밥상을 채워냈다. 매년 매실, 유자, 오미자로 청을 담가놓고 일 년 내내 먹으며 먹을 때마다 ‘이거 우리가 만든 거지? 맛있다’ 하는 아이들의 즐거움을 ‘유통기한 표시가 없음’으로 인해 더 이상 보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 어떻게 먹을 것인가? 먹는 것의 정치활동
나는 더운 여름날에 감자가 부서지게 푹 익은 수제비 한 그릇을 떠올리면 왠지 몸에 에너지가 돌고 마음도 평온해진다. 엄마가 끓여주던 한여름의 수제비는 기억을 여행하는 순간의 매개가 된다. ‘오늘 무엇이 먹고 싶다’는 욕구는 내 몸이 나에게 필요한 영양성분을 알리는 자연스러운 구조 신호이기도 하다. 그 몸의 신호를 스스로 알아채고 무엇을 먹을지 결정하는 것. 이것은 한 사람에게 자기만의 ‘먹는 길’을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진흙쿠키를 먹는 아이와 포켓몬빵을 먹는 아이가 이 지구에 함께 살고 있다. 기아와 비만이 동시대에 함께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떠올리는 것이 괴로울 수도 있지만. 이 자각을 통해 어떻게 먹을 것인가의 답은 간단해진다. 먹는다는 것은 허기를 달래고 열량을 채우는 것을 넘어, 한 사람의 신체와 정신적 건강에 영향을 주는 근원이며, 더 나아가 한 사람의 문화적 사회적 정체성을 설명할 수도 있게 된다. 먹는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이다.
공동육아에서 밥을 먹기 전에 모두 함께 부르는 노래가 있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은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서로 나누어 먹는 것. 잘 먹겠습니다. 친구들아 맛있게 먹자.’ 이 노랫말에서처럼 밥 한 그릇에는 세상의 이치와 온갖 이해관계가 담겨 있다. 윤리적이고 책임감 있는 먹는 행위. 그 의미를 알고 어떻게 먹을지를 사유하고 선택하는 것은 정치활동이 된다. 평범한 가정의 식탁에 전 지구적 식재료가 올라와 있는 시대이지만, 지역의 로컬 푸드를 기반으로 한 밥상, 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에 대한 고민을 담아 육류의 섭취를 줄인 식단에서, 나는 식탁 위의 작지만 큰 개혁을 믿는다.
두부를 건져내는 가마솥의 향기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콩을 기르는 땅을 함부로 하지 않을 것이다. 때로는 배달 음식과 밀키트의 간편함에 빠지기도 하지만, 먹거리를 돈만 주면 어디서나 살 수 있는 상품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 밥상에 올라오는 먹거리가 어디서 누가 어떻게 길러왔는지, 어떤 가공과 유통 과정을 거쳐 나에게 왔는지를 안다는 것. 가능하면 먹거리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의 과정 일부에 내 손의 품을 거치는 것. 골치 아프고 귀찮은 일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재밌는 일이기도 하지 않은가. 우리 아이들에게 오늘의 먹거리는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 것인가.
◇ 안전을 위한 최선은 무엇인가
2015년, 모든 어린이집에 CCTV가 설치되었다. 아동학대를 우려한 의무 사항이다. 보존식 냉동고를 들이며 그 시기가 떠올랐다. 과연 CCTV를 들이며 아동학대가 근절되었는가? 각 어린이집의 CCTV는 예방 차원에서 내내 돌아가고 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는 대부분 CCTV가 없다. 양육자와 교사 간 신뢰 관계와 문화를 바탕으로, 매년 미설치 동의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후약방문 같은 보존식 냉동고도 이와 같은 기준을 제시하면 어떨까? 각 기관에서 합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안전을 위한 지도와 점검과 의무 이전에, 어린이집의 식탁 위에 올라오는 식재료에 대한 출처를 알고 고민하며, 그 과정에 양육자와 교사, 아이들의 일손이 더해지며 책임감 있는 주방의 먹거리 문화를 만들어갈 때, 우리의 불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적절치 않은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준을 세움에 있어 아이들에게 좋은 환경까지 하향 평준화 시키지는 않았으면 한다. ‘아이들이 잘 먹는다’는 건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 뿐만 아니라 즐겁게 먹는 경험을 주는 것까지를 포함한다. 좋은 음식을 즐겁게 먹는 경험을 이 시기에 맘껏 경험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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