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_0701_한겨레 서울&'완전 자유놀이’로 자란 아이들, 창의력 느는 모습 눈에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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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2-07-01 07:20 조회445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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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자유놀이’로 자란 아이들, 창의력 느는 모습 눈에 보여요”
1997년부터 25년 동안 자유놀이 이어온 야호어린이집…
계절·마당·텃밭·신체놀이 등 놀이 속에서 아이들 ‘성장’
“아이들이 갈등 스스로 해결하는 모습 보면 ‘짜릿’”
놀이가 두뇌 자극, ‘전두엽’ 등 발달하고
놀면서 ‘친구·형·동생 관계 맺음’ 배워
부모도 ‘일일교사’ 참여, 주인의식 높아
교육부와 복지부가 ‘개정 누리과정’을 확정·발표한 지 오는 19일로 3년이 된다. 현재 전국 어린이집에 적용되고 있는 이 개정 누리과정은 만 3~5살 어린이들이 교육과정에서 ‘충분한 놀이 경험을 통해 자율성과 창의성을 신장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이런 ‘놀이 중심 교육’은 그 이전의 ‘인지 교육 중심’과는 크게 달라진 것이다.
이 개정 누리과정의 의의를 수도권에 있는 한공동육아 어린이집을 통해 살펴본다. 경기도 고양시 일 산동구 성석동에 있 는 ‘야호어린이집’(cafe.naver.com/yahogongdong)은 개정 누리과정이 만들어지기 훨씬 전인 1997년부터 현재까지 25년 동안 변함없이 놀이만으로 아이들을 키워온 곳이다. 편집자
“오늘은 무슨 놀이를 할까?”
지난 6월24일 오전 10시. 고양시 일산동구 성석동에 있는 야호어린이집 2층에서 ‘파릇파릇’이 등원을 마친 5·6·7살 아이 15명에게 물었다. 파릇파릇은 야호어린이집 15년차 선생님의 별명이다. 25명의 아이가 함께 사는 야호에서는 선생님이라는 말 대신 별명을 부른다. 정교사 5명과 보조교사 2명, 부모들까지 모두 별명으로,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존대 없이 평어를 사용한다.
“파릇파릇, 오늘은 좀 피곤해.”
7살짜리 한 아이가 말하자 아이들 여럿이 동의하는 듯 “나도”를 외친다. 그럴 만하다. 전날 비가 쏟아지자 아이들은 너도나도 물놀이하고 싶다며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실컷 물속에서 뛰어논 아이들은 다시 실내로 돌아와 항상 준비된 편한 여벌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빗속 놀이’로 다른 때보다 체력 소모가 컸다. 아이들의 바람과 상태를 확인한 파릇파릇은 “그럼 오늘은 실내에서 놀아야겠네”라고 말했고,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시했다.
아이들과 함께 ‘오늘 할 놀이’ 정해
야호어린이집의 하루 첫 일과는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 ‘오늘 할 놀이’를 정하는 것이다. 15분 정도 걸리는 이 시간을 ‘아침 열기’라고하는데, 이때가 야호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이 사회를 보는 딱 30분 중 절반이다. 나머지 15분은 저녁 6시 귀가를 앞두고 진행되는 ‘하루닫기’ 시간이다. 하루 닫기 시간에는 아이들이 하루 동안 느낀 것을 자유롭게 얘기한다.
‘아침 열기’와 ‘하루 닫기’ 사이의 긴 시간이 야호어린이집의 놀이시간이다. 물론 여기에는 점심시간과 낮잠시간 1시간씩이 포함된다. 하지만 점심과 낮잠은 놀이를 위한 준비와 휴식시간이라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은 모양새다.
이날 아이들이 택한 실내놀이는 마스크에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는 놀이다. 아이들은 마스크에 자기가 좋아하는 꽃이나 로봇 등을 쓱쓱 그려나갔다. 하얀 마스크가 갑자기 알록달록 색깔 마스크로 변신했다.
그런데 아이들 몇이 밖에서 하는 물놀이가 다시 하고 싶어진 모양이다. 1층에 있는 4살 방인 ‘밝은방’ 동생들이 물놀이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동한 것이다. 동생들은 전날 비가 많이 와서 실내에서 놀았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나서 마당에 고인 물에서 물놀이하기 시작했다. 밝은방 동생들이 물놀이하는 모습을 보자 기운을 차린 5·6·7살 통합방인 ‘나무방’ 아이들 몇이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아이들의 놀이공간이 실내와 마당으로 나뉘자 파릇파릇과 ‘안나’ 선생님은 계속 실내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고, ‘별나무’ 선생님이 마당으로 나가는 아이들과 함께 움직였다.
아이들이 놀러가는 곳에는 꼭 선생님이 함께한다. 하지만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동행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챙겨주고 안전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다. 아이들 옆에서 ‘먼저 놀아본 선배의 자세’로 아이들과 함께 논다.
실내와 마당에서 논 아이들은 점심시간이 되자 17년간 식사를 챙겨주신 ‘반짝이’ 선생님이 친환경 재료로 만든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그리고 새로운 놀이로 오후를 맞이한다. 아이들은 하루 닫기 시간까지 또다시 놀이에 흠뻑 빠진다.
야호어린이집에서는 이렇게 지난 25년 동안 변함없이 ‘놀이로 하루를 열고 놀이로 하루를 닫아왔다’. 그런데 이런 놀이 중심의 활동을 처음 접해보는 부모들이라면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길 것 같다. 매일매일 놀이할 정도로 놀이는 많을까? 매일 놀다보면 아이가 놀이에 싫증을 내지 않을까? 놀이만 하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선행학습’을 한 아이들에게 뒤처지지 않을까?
충분히 의문을 가질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교육부와 복지부가 2019년 놀이 중심으로 유아 교육과정 개편을 단행한 것을 보면 놀이 중심 과정이 분명 장점이 많을 터다. 야호어린이집의 선생님과 부모들, 그리고 공동체교육 전문가인 전주리 ‘사단법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무총장에게 ‘진짜 팩트’를 들어봤다.
자연 속에 감춰진 무한한 놀이들…
우선 야호어린이집 관계자들은 아이들의 놀이는 무한히 많다고 말한다. 단옷날 창포물에 머리를 감거나 부채를 만드는 등의 세시절기 놀이부터 마당놀이, 흙놀이, 텃밭놀이, 신체놀이, 계절놀이, 실내놀이, 숲놀이, 마을나들이까지…. 이렇게 놀이가 무궁무진한 이유는 아이들은 ‘접하는 모든 것을 놀이로 바라보면서’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내기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커진다.
안나는 “아이들이 히어로를 그리면서 그 히어로가 가진 힘에 대해 치열하고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몇 명이 모여 좋아하는 노래들로 공연을 만들기도 한다”며 “그럴 때면 참 기발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의 상상력과 창의력은 자연을 만날 때 훨씬 풍부해진다. 별나무는 “아이들은 어린이집 근처에 있는 텃밭이나 숲에 가면 놀이기구가 없어도 나뭇가지를 주워 기지를 만드는 등 창의적인 놀이를 만들어낸다”며 “여름엔 곤충들이 날아다니고 가을엔 열매가 맺는 등 자연이 매일 변하면서 아이들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별나무는 6년 전 첫 아이를 야호어린어집에 보내고 이어서 둘째 아이도 야호에 보냈다. 두 아이를 모두 야호에 보내는 동안, 공동육아의 매력에 빠져 올해부터는 야호의 선생님이 되었다. 별나무는 지금도 “아이들을 야호어린이집에 보낸 것이 아이들을 위한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야호어린이집 아이들은 온종일 놀지만, 정작 놀이기구는 많지 않다. 나무블록과 나뭇조각, 작은 통에 넣은 곡식, 나들이에서 주워온 조약돌 등이 전부다.
자연 속 놀이를 중시하고 플라스틱 종류의 놀이기구를 쓰지 않는 까닭도 있다. 하지만 파릇파릇은 “놀이기구가 적정해야 아이들이 놀이기구를 함께 사용하는 법, 양보하는 법 등을 배운다”고 말한다.
적은 놀이기구 통해 ‘양보’를 배운다
야호어린이집에서 5·6·7살 아이들을 함께 놀게 하는 것도 이런 관계 맺음과 무관하지 않다. 파릇파릇은 “처음 함께 생활하게 된 5살짜리 아이는 형님들 사이에 끼기 위해 노력하고, 7살 누나들은 나들이 때 동생들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등 사랑과 배려심을 키워간다”고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대부분이 외둥이인 요즘 아이들이 ‘형제·자매 관계’를 배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놀이 중심 활동을 한 아이들이 인지교육을 중심으로 자라난 아이들에 비해 학습능력이 뒤지지 않을까? 전주리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무총장은 그렇지않다고 단언한다. 전 사무총장은 “한글을 5살 이전에 배우려면 1년이 걸리는 데, 7살에 배우면 보통 한 달에 끝낸다”며 “아이들의 시간은 정해져 있으므로 어린 시절에는 놀이를 통해 창의력을 높이고 안정적 정서를 경험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인간 뇌의 ‘사령탑 구실’을 하는 전두엽은 유아기에 기초가 형성되며 나이가 어릴수록 더 빨리 발전한다. 전 총장은 따라서 어린 시절에 놀이를 통해 머리에 제대로 자극을 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래야 전두엽 등 두뇌 구조가 튼튼해진다. 전 총장은 “현대로 올수록 아이들의 놀이가 점점 부족해지고 있어서, 사춘기 이후 정체성 확립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도 높다”고 설명했다.
놀이 부족하면 사춘기 이후 ‘어려움’
야호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부모들도 전총장의 말을 경험으로 체득하고 있다. 7살아이를 야호에 보내는 엄마 ‘오키’는 야호어린이집 동생들이 집에 ‘마실’ 왔을 때를 떠올리면 언제나 흐뭇한 생각이 든다. ‘마실’은 야호어린이집 아이들이 서로의 집에 놀러가는 것을 가리킨다.
“집에 놀러 온 두 동생과 저희 아이 사이에서 놀다가 갈등이 일어났어요. 아이들 목소리가 커져 걱정됐지만 잠시 지켜봤죠. 잠깐 정적이 있더니 저희 아이가 대안을 제시하고 동생들은 수용하면서 다시 놀이가 이어졌어요. 어른의 도움 없이 말이죠. 저희 아이는 갈등 상황을 회피하는 경향이 많은데 야호에 다닌 덕분인지 갈등을 스스로 해결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짜릿’한 느낌까지 들었어요.”
역시 7살 아이를 보내는 엄마 ‘초코’도 “4살부터 7살 때까지 야호에 다니면서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와 흐뭇하다”고 말한다. “4살 때는 야호의 언니·오빠들과 생활하고 7살 때는 동생들과 생활해서인지 아이들이 여러 명 모였을 때 적응력이 뛰어나고 다른 아이들과의 융화력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의 이런 변화는 부모들이 야호어린이집의 주체로서 많은 관심을 보인 결과이기도 하다. 야호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부모들은 우선 ‘야호공동육아협동조합’의 조합원이 돼야 한다. 이에 따라 출자금 300만원을 내고 (출자금은 졸업 3년 뒤 공적자금을 제외하고 돌려받는다) 어린이집을 공동운영하는 주인으로서 시간과 관심을 쏟아야 한다. 7살 아이의 엄마인 말리는 “3년여 전 아이를 야호에 처음 보낼 때 야호는 이미 22년을 이어온 상태”라며 “이렇게 오래된 공동육아어린이집이라면 그만큼 ‘힘’이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고 말한다. 말리는 아이를 야호에 보낸 뒤 그 힘의 실체를 확인한다. “아이들을 위한 김치를 담글 때도 소금에 절이느냐 마느냐까지 시시콜콜하게 논의하고 결정하는 ‘깊은 만남’과 ‘주인의식’이 야호의 힘”이라는 것이다.
부모들이 당번 정해서 청소 맡아
말리는 주인의식의 한 예로 ‘깔끄미 활동’을 꼽았다. 깔끄미 활동은 어린이집을 부모들이 돌아가면서 청소하는 것을 말한다. 말리는 “이미 상당수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이 깔끄미 활동을 청소대행업체에 맡겼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야호에서도 최근 몇 년째 깔끄미 활동을 업체에 맡길지 논의했지만 언제나 부모들이 직접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모들은 선생님들의 휴무를 대신해 1년에 평균 4~5번 정도 ‘일일교사’로도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부모들의 주인의식이 살아 있기에 아이들의 놀이를 직접 접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그렇기에 놀이에 대한 신뢰 또한 높다는 것이다.
야호어린이집에서는 엄마들 못지않게 아빠들의 ‘주인의식이 높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야호의 엄마들은 “아빠들이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을 위해 하원 길 텃밭에서 힘을 합쳐 팥빙수 가게를 열고, 어묵을 끓이고, 돈가스도 튀긴다”며 신기해한다. 어쩌면 이 또한 놀이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놀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목표나 목적 없이 그냥 재밌어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야호에서 만난 아빠들의 만남도 “어떤 필요나 이해관계없이 관계를 맺는 것”이다. 마치 “학창 시절친구를 만나는 느낌을 갖게 된다”는 게 엄마들의 분석이다. 그러니 좋은 ‘육아동지’와 함께하는 여러 활동은 아빠들에게는 ‘일종의 놀이’처럼 기쁘게 다가오는 셈이다.
야호어린이집 취재를 마치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이제 교육부의 누리과정도 놀이가 주가 된 상태이니, 야호어린이집과 다른 일반 어린이집의 차별성은 거의 없어진 것 아닐까? 전주리 총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야호 아이들 웃음에 그늘이 없는 이유
“놀이 중심이라고 하지만 놀이의 질이 다릅니다. 상당수 일반 어린이집의 놀이가 ‘프로그램화한 놀이’라면 공동육아어린이집의 놀이는 완전 ‘자유놀이’입니다. 즉 많은 어린이집이 아이들의 놀이와 관련해 사전에 계획을 세우고 교사가 주도하지만, 공동육아에서는 아이들의 본성에서 나오는 그대로 놀게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주도하고 교사는 도와줍니다. 그렇게 하면 놀이할때 아이들의 만족감, 행복감이 표정에 드러납니다.”
전 총장은 야호에서 어른과 아이를 가리지 않고 평어를 쓰는 것을 한 사례로 들었다. “어린 아이일 때 어른을 보면 거인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어른과 평어를 쓰면 그 만큼 위축된 분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돌보고 교육하는 어른과의 관계가 편해지면 아이들은 마음껏 자유롭게 놀 수 있습니다.” 야호를 비롯한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경우, 진정한 자유놀이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호칭 하나에서도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호와 상당수 일반 어린이집의 경우 놀이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창의성 등에서도 여전히 차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것이 야호 어린이들의 웃음에 그늘이 없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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