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철 논설위원의 직격 인터뷰 | 이기범 북민협 회장

인권을 북한 망신주기나 비핵화 협상 지렛대로 사용 말고
평화·인도주의·개발협력 함께 추진해야 선순환 가능
북 무력시위 자제하고 코로나 유행하는 특수 상황이 기회

나사 하나, 약솜 하나 보내려해도 대북제재 면제 승인 필요
한반도 평화로 가는 협력의 길 모두 차단한 잔혹한 장벽
북에 감염병관리센터 제안하면 진정성 보여줄 수 있을 것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이자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인 이기범 숙명여대 교수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연구실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 가로막는 대북 제재 해제해야'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이자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 회장인 이기범 숙명여대 교수가 지난 15일 오전 서울 용산구 연구실에서 `대북 인도적 지원 가로막는 대북 제재 해제해야'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가 대북정책에도 ‘인권’을 강조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60여개 대북 인도적 지원 민간단체들로 구성된 대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이기범 회장은 바이든 정부가 인권을 북한 망신주기 수단이나 비핵화 협상 지렛대로 쓰는 것은 인권의 취지에 맞지 않고 평화, 인도주의, 개발협력을 입체적으로 함께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권과 인도주의 정신에 부합하는 이산가족 상봉 재개에 미국이 관심을 가질 것을 제안했다.

 

이 회장은 남북 어린이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꾼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남북을 49차례 오가며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콩우유 공장, 연필 공장, 어린이 병원을 만들었다. 20년 넘게 북녘 사람들과 협력사업을 하면서, 신뢰는 협력의 결과이지 협력의 조건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는 숙명여대 교육학부에서 교육철학을 가르치고, 어린이평화운동단체인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을 맡고 있다. 해송어린이걱정모임(1978년)을 시작으로 공동육아연구원(1996년, 현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등을 꾸리는 데도 앞장섰다. 지난 15일 서울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이 회장을 만나 ‘바이든 시대와 남북 교류·협력’에 관해 얘기를 들었다.

―미국이 대북정책을 검토 중인데,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인도적 지원은 할 수 있다’고 했다.

 

“바이든 정부가 대북정책을 검토할 때 북한이 외부에 위협이 될 수 있는 핵실험 등을 상당히 자제했고 코로나 19로 인해 모든 나라가 비상상황이란 점을 고려할 것으로 본다. 인도주의는 해석에 따라서 적용의 폭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이 `북한에 인도주의적 지원을 고려할 수 있다’라고 했을 때 인도주의가 무슨 의미인가. 그저 굶주림을 면할 정도의 식량을 긴급구호 차원에서 주는 게 인도주의인가. 지난해 대북 전단살포금지법 논란 당시, 페트병에 든 쌀을 대북 전단과 같이 보내고 이를 인도주의 실현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쌀을 풍선에 달아 북한에 떨어뜨리고 북한 사람들이 주워 먹는 것이 과연 우리가 기대하는 인도주의 모습일까. 미국이 코로나 상황에서 자국민에게 적용하는 인도주의와 북한 주민에게 적용할 인도주의가 같은 기준일까 궁금하다.”

 

―북한에 적용할 인도주의는 어떠해야 하나?

 

“인간의 존엄성 인정이란 전제 아래에서 그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인류적 책임으로 인도주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한 사람들이 굶주림을 면하거나 혹은 죽지 않는 수준의 인도주의라면 인간의 존엄성 인정이란 전제에 맞지 않는다. 미국 정부는 비핵화 협상과 더불어 코로나 비상시기에서 북한 주민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이들의 요구를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바이든 정부에 걸맞은 조처라고 생각한다.”

 

―미국 대북정책에서 비핵화와 인도주의 대책이 병행해야 한다는 것인가?

 

“비핵화의 목적은 한반도에서 평화와 번영을 구축하고 북한이 국제사회에 진입해 지구촌이 좀 더 평화롭게 살자는 게 아닌가. 비핵화 자체는 그 목적으로 가기 위한 하나의 중간 목표라고 본다. 비핵화가 달성되기 전에는 북한 주민들에게만 적용되는 아주 제한적인 인도주의가 아니라, 지구촌과 인류의 평화와 번영이란 근본 목적 실현에 걸맞은 과정을 비핵화와 함께 밟아야 한다. 이런 방식이 바이든 정부가 국제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바이든 정부가 당장 무엇을 하는 게 필요한가?

 

“미국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산가족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지 잊히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은 남북 간 문제인데 바이든 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있나.

 

“예전에는 재미동포들이 북한 방문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미국 교포들이 북한 방문을 못 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못 만나고 있다. 최근 미국 하원에서 한국계 의원 4명 등 의원 21명이 참여해 북·미 이산가족 상봉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에는 국무장관이나 국무장관이 지명한 사람이 북·미 이산가족 상봉 방안을 한국 당국자들과 논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의제로 설정하고 이산가족의 인도적 상황에 대하여 조건 없이 지원한다는 태도를 가지면, 남북관계 등에서 다른 통로도 열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사람이 남북을 오가려면 여러 가지 절차가 정비돼야 한다. 코로나 방역, 응급상황에 대비할 의료시설을 갖춰야 한다. 남북 간 철도나 도로 통행이 가능해야 한다. 지금 완전히 남북 왕래가 끊긴 상태여서 절박한 이산가족 상봉 문제부터 시작을 해나가면 남북관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나. 이산가족 상봉은 인도주의와 인권을 강조하는 바이든 정부로서 굉장히 명분이 있는 일이라, 대북정책 첫걸음이 굉장히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인권을 강조하는데, 대북정책에 미칠 영향은?

 

“2015년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지속가능한 개발, 인도주의, 평화의 삼각체제(트리플 넥서스) 논의가 활발하다. 과거에는 개발, 인도주의, 평화가 따로따로 이뤄졌기 때문에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했다. 유엔이 수십 년 동안 시도를 통해서 세 가지 요소를 병행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깨달았다. 인권의 기본은 자기 힘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역량을 갖는 것이다. 우리가 북측 인권을 우려할 때 주로 정치권, 시민권만을 이야기하는데 경제적 권리, 사회적 권리, 문화적 권리도 있다. 지속가능한 개발은 평화권, 발전권, 연대권에 기초하고 있다. 이는 평화, 인권, 인도주의, 개발협력이 선순환되어야 된다는 인식이다, 바이든 정부가 북측의 인권을 우려할 때 정치권·자유권만 강조하거나 인권을 북측을 망신주는 방편으로 사용한다든가, 비핵화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지렛대로 쓰는 것은 인권의 취지에 맞지 않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인권 중시를 환영하면서 평화, 인도주의, 개발협력을 입체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예를 들자면 평양에 주재하는 유엔개발계획(UNDP)과 북측 당국이 중장기 전략보고서를 합동으로 발표했는데, 여기에 여성의 지위 향상과 인권개선에 대한 내용도 있다. 이는 국제사회와 생산적 관계 속에서 북측 당국이 인권개선을 인식하고 조정할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바이든 정부도 이런 성공 모델을 참고하고 국제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을 확장하는 것이 굉장히 필요한 시점이다.”

 

―대북제재가 남북교류협력의 걸림돌이라고 하는데.

 

“제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어린이어깨동무라는 단체가 1990년대 말에서부터 2010년까지 활발하게 북녘 어린이들의 생명을 살리고 성장을 돕는 일을 했다. 2008년 남북이 협력해서 평양의대병원에 소아병동을 신축했다. 북한은 땅과 노동력, 가능한 건축자재를 댔다. 의료장비 등은 남측이 인천항에서 남포항으로 배에 실어 보냈다. 지금 대북제재 하에서는 그런 사업을 상상도 못 한다.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 중의 하나가 상상조차도 못한다는 거 아닌가. 유엔 대북제재가 행위 자체뿐만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상상력과 가능성까지도 차단하는 굉장히 잔혹한 장벽이다. 한반도 평화로 가기 위한 협력의 여러 갈래 길이 있는데 그 길을 다 차단해버린 것이 대북제재의 가장 결정적인 폐해라고 본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장벽으로 작동하나?

 

“저희가 북한 농촌 마을에 모자보건센터를 만들었는데 이를 운영하려면 수시로 연락을 하고 물자가 가야 한다. 예를 들자면 북측에 의료장비를 보냈는데 암나사(너트) 하나라도 빠지면 장비 가동이 안 된다. 지금은 암나사 하나를 북한에 보내려면 대북제재 면제 승인을 받아야 하니까, 사업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상황이다. 암나사뿐만 아니라 의료용 약솜도 제재면제 승인 대상이다.”

 

―약솜이 대북제재 대상인가?

 

“북측에 보내는 모든 물품은 승인을 받아야 하므로 의무적으로 우선 신고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신단층촬영(CT)기계라면 세부 부품 목록을 다 내야 하고 그 부품의 원산지 표시도 해야 한다. 또 시티 장비 작동원리를 제출해야 한다. 장비의 동력이 어떻게 쓰이고, 운영체계는 디지털화된 것인지, 컴퓨터가 들어간다면 어떤 마이크로칩을 사용했는지 등을 설명해야 한다. 이런 정보 중에는 해당 기업의 영업비밀들이 있어 외부에서 파악하기 어렵다. 우리가 중국에서 북한에 보낼 물품을 사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중국업체들은 더욱 그런 정보를 공개하지 않으려고 한다. 시약이나 의약품 같은 경우는 더 복잡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성분이 몇 퍼센트 들어있는지 신고해야 하는데 이런 영업비밀을 공개할 시약회사, 제약회사가 없다. 대북교류협력단체가 중국에서 북한에 보낼 물품을 구매하면 중국업체에 대금을 송금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시중 은행들이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북한 등 제재 국가와 거래하는 다른 국가 기업·개인도 제재)을 의식해 대북교류협력단체의 중국 송금을 일절 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겹쳐 지금은 대북지원이 원천봉쇄돼 있다.”

 

 

이기범 북민협 회장(앞줄 왼쪽)이 2019년 5월14일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열린 ‘대북식량지원을 위한 종교·민간단체 합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 누리집
이기범 북민협 회장(앞줄 왼쪽)이 2019년 5월14일 서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강당에서 열린 ‘대북식량지원을 위한 종교·민간단체 합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 누리집

 

―어린이어깨동무가 평양의대병원에 소아병동을 지은 게 2008년인데, 그때도 2006년 북한 핵실험 이후 대북제재가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 정도는 아니었다. 제재가 점점 더 강화돼서 이제 거의 모든 물자를 엄격하게 관리한다. 역사상 가장 가혹한 제재가 아닌가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북한이 2018년 이후에는 그 제재 원인이 됐든 핵실험, 마시일 발사 같은 행위들을 상당히 자제하고 있고 지금은 코로나 대유행이라는 특수상황이다. 유엔 제재위원회도 제재면제를 특별하게 판단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북한이 국제사회가 걱정할 행동을 다시 한다면 제재로 돌아가면 된다.”

 

―대북제재 면제 승인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나.

 

“승인이 필요 없는 물품과 절차를 거쳐야 하는 물품을 분류하고 고시를 해야 한다. 절차를 거쳐야 하는 품목 중에서도 이미 선례가 있으면 그 절차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근본적으로는 유엔 제재위원회가 우리 정부에 이 절차를 위임하는 것이 이 유엔 회원국 간의 책무성을 존중하는 차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한국 정부에 절차를 위탁해서 정기적으로 결과 보고를 받고 문제가 있을 때는 시정을 촉구하고 정부가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이 맞다. 어린이어깨동무를 비롯한 몇몇 국내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이 유엔경제사회이사회의 `협의적 지위’를 인정받았다. 유엔과 협의할 수 있는 자격을 받은 이들 단체의 경우 포괄적으로 그 사업을 승인해주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를테면 북한 어린이를 위한 콩 우유 생산설비도 일일이 면제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프로젝트 계획서를 제출해서 그 계획이 타당할 경우 협의 위치에 있는 기구가 관련 물자를 포괄적으로 집행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법이 있다. 디지털 과학기술에 시대에 중세시대처럼 종이 목록을 들고 암나사 하나까지 따지는 비정상적인 방법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우리는 막힌 남북관계를 뚫기 위해 보건협력, 개별관광 등을 강조하는데 북한은 올 초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이런 게 비본질적이라고 딱 잘라버렸다.

 

“북측이 그렇게 나온 배경도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관계 일을 오래 한 시민단체 사이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고 할 수 있는 일과 지금 해야 하는 일을 하라’는 말이 있다. 일도 순서가 있다. 남북 양쪽이 합의하기 쉬운 일부터 시작해 좋은 경험이 쌓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북측과 대화가 재개되지도 않았는데 하고 싶은 이야기인 사업부터 먼저 내놓는다. 관계회복이 먼저인데 사업 이야기부터 나가니까 북측으로서는 상당히 부적합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2018년 남북 정상 합의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군사 긴장 완화인데, 우리 국방예산이 매년 큰 액수로 늘어났고 첨단 무기를 계속 수입하고 있다. 북측으로서는 불안감과 박탈감, 배신감이 커지지 않았을까 싶다. 지난해부터 민간단체들이 정부에 `남북대화의 조건을 만드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한다. 남북 정상 간에 합의된 사항들은 꼭 지켜야 한다’고 계속 제안했다. 두 번째로는 국회도 일부분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국회가 입법이나 결의안 채택 같은 것들을 통해서 정권이 바뀌어도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북측 처지에서 봐서는, 가장 중요한 정상 간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사업 약속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실망감에서 우리 정부가 ‘비본질 이야기’를 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근본 신뢰부터 회복하자고 이야기하면 북측이 진지한 제안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 확진자가 1명도 없다고 한다.

 

“북측이 코로나 초기에는 자력갱생의 노력으로 방역에 최우선을 둬 성과를 내기도 했다고 본다. 북측이 이 성과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의 방역체계, 치료체계 경제협력체계에 일정 부분 진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구적 감염병 확산의 시대에 안보 의미를 북측 당국도 한번 다시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건강하게 생존해야 한다는 인간 안보 중요성이 커졌다. 지구적 감염병 확산의 시대에서는 강대국들도 예외 없이 취약하다. 외부세계와 협력은 북측이 취약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당당한 선택이 될 수 있다.”

 

1998년 11월11일 방북한 당시 권근술 한겨레신문사 사장 겸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왼쪽에서 두번째)과 당시 이기범 어깨동무 사무처장(맨 오른쪽)이 평양 고려호텔 면담실에서 남녘 어린이가 북녘 어린이를 생각하며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 500점을 북쪽 인사들에게 전달하기에 앞서 이를 펼쳐보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98년 11월11일 방북한 당시 권근술 한겨레신문사 사장 겸 어린이어깨동무 이사장(왼쪽에서 두번째)과 당시 이기범 어깨동무 사무처장(맨 오른쪽)이 평양 고려호텔 면담실에서 남녘 어린이가 북녘 어린이를 생각하며 자신의 얼굴을 그린 그림 500점을 북쪽 인사들에게 전달하기에 앞서 이를 펼쳐보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우리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북관계 관련한 정부 내 거버넌스, 민관 거버넌스 협력에 대한 걱정이 있다. 2018년 이후 우리 정부가 에너지, 철도·도로, 식량문제 등 북쪽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남측 정부가 해결한다는 식의 제안을 했다. 결국은 우리 정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북측은 정부 대 정부 간에 모든 사업을 하면 된다는 인식했다. 이 결과 시민사회가 남북관계에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졌다. 우리 정부가 기간 산업은 정부 차원에서 국제사회와 결합해서 진행하고 지역은 민간단체와 지자체가 맡는 민관 거버넌스 구상을 북측에 전달했다면, 정부와 민간이란 남북협력의 두 바퀴가 함께 돌아갔을 것이다. 정부와 민간단체 간 일상적인 소통, 협의, 역할분담 등이 있어야 한다.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에는 민간단체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아직 남북인도협력의 근거 법률이 없고 남북교류협력법도 시대에 뒤처져 있다.”

 

―올해 남북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

 

“첫 번째는 문재인 대통령도 강조한 생명공동체다. 이를테면 감염병관리센터 설치는 동포의 건강을 걱정하는 진심을 표현하는 시설로 북측에 제안할 수 있을 것이다. 보건의료 협력은 단순한 물자지원이 아니라 남북이 공동으로 생명공동체 기반을 구축하는 차원에서 필요하다. 두 번째는 농업협력 분야인데, 북한 식량 사정이 어렵다는 얘기가 국제기구를 통해 나오고 있다. 현재는 중앙 정부만 대북 쌀 지원을 할 수 있는데 지방자치단체나 민간단체도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정부가 대북 쌀 지원을 검토하기 전에 민간단체가 북측에 쌀 제공 의사를 타진해볼 가능성이 열려 정부 부담을 덜 수 있다.”

 

―남북관계에서 북민협의 역할은?

 

“민관 거버넌스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부의 의지도 있어야 하지만 민간의 대표성이 있고 건전성이 있어야 한다. 정부의 조처 때문에 민간 활동이 규제되는 것이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검증하고 윤리적 수준을 올려야 한다. 올해 북민협은 민간의 대표성과 건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 국제개발 협력 분야에서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KOICA),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 협력 관계를 눈여겨보고 있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가 국제개발협력 사업평가와 그 사업 추진의 윤리성 관리를 하고 있다. 두 번째는 젊은이들의 경제 형편이 어렵다 보니까 북한을 타자화하면서 무관심을 넘어 혐오까지 한다. 우려스러운 현실이다. 여기에는 정부 당국, 대북사업단체들의 책임도 일부 있는 것 같다. 그동안 북한 관련 논의가 굉장한 엄숙주의여서 젊은 세대 감성과는 맞지 않는다. 민간단체가 해온 남북협력 이야기를 이들의 눈높이와 맞게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풀어 유튜브 등으로 알리는 노력을 하려고 한다.” 권혁철 논설위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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