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2-01 베이비뉴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과 어른들이 꿈꾸는 세상이 같아지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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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1-02-19 21:37 조회1,171회 댓글0건본문
* 원문링크 : https://www.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2396
[작은도서관과 함께 하는 마을육아] 아동학대 없는 세상 만들기
◇ 우리 아이의 꿈은 뭘까?
“현우야, 너 이 다음에 어떤 사람 되고 싶어?"
“응.”
“아빠는 니가…” (아빠는 우주비행사, 의사, 골프선수를 떠올린다)
“착한 사람.”
차량 정지선을 훨씬 앞서 나가있던 아빠는 움찔하며 천천히 후진하며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그렇지∼ 착한 사람 되는 게 먼저지.’
한 자동차회사의 광고인데, 훅 들어오는 메시지에 뭉클하면서도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온갖 경쟁과 위험이 판치는 세상에 나는 내 자식에게 ‘착한 사람’이 되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학교는 정의와 도덕을 가르치지만, 아이들은 배울수록 어른들이 만든 세상이 가짜라는 걸 알게 된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과 어른들이 꿈꾸는 세상은 왜 다른 것일까?’
아이의 꿈을 묻는 어른들이 이제는 답해야 할 차례다.
‘우리는 어떤 어른인가?’ ‘나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나?’
◇ 아동친화도시는 없고 아동학대만 남았다
무책임한 어른들이 만든 세상에 미안하고 가슴 아픈 일들만 늘어간다. 정인이 사건으로 온 국민이 분노하며 아동학대 문제에 관심이 높다. 뉴스, 방송, 국회의원, 아동관련 기관, 시민단체, 여기저기서 아동학대 기사, 정책, 대책들이 경쟁하듯 쏟아진다. 아동학대 이슈가 부풀어 오른 풍선처럼 커지다 결국 소리만 요란한 채 터지고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 같은 기시감이 든다. 매번 그렇게 우리는 제2의, 제3의 정인이를 만나지 않았던가?
울산에는 작년 한 해 동안 5개 구군에서 모두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했다. 몇 개월 사이에 울산의 어린이집 아동학대 관련 청와대 국민청원만 5개다. 물고문에 가까운 학대, 맞고 내팽겨치듯 던져진 아이, 부스터에 묶인 채 꼼짝 못한 아이, 옆에서 학대당하는 친구를 보며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많은 아이들이 있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의 가장 큰 어려움과 고통은 학대사실 입증부터 고소, 고발, 처벌, 아이심리치료, 예방 및 대책 요구까지 모두 부모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해당지자체, 경찰, 아동학대 전담 기관, 어느 곳 하나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결하지 않는다. 언제 끝날지 모를 힘겨운 싸움이다. 그래서 피해자가 퇴소하며 마무리되거나 개인의 문제로 조용히 묻히는 경우가 많다.
울산 어린이집 아동학대 예방 촛불문화제. 2020년 11월 19일 '세계아동학대 예방의 날'. ⓒ노미정
불행중 다행인지 울산에서 연이어 발생한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건은 울산 전체의 문제로 공론화됐고, 각 구별 피해부모님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기에 가능했다. 2020년 11월 19일 ‘세계아동학대 예방의날’ 롯데백화점 광장에서 ‘아이들을 지키자’는 간절한 마음을 촛불로 밝혔다.
울산시는 작년 12월, 아동이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아동의 권리와 복지를 보장하는 ‘울산시 아동친화도시 조성 조례안’ 시행을 발표했다. 지자체마다 그럴 듯한 문장들로 이뤄진 ‘아동친화도시’라는 이름의 무수한 정책들. 울산이 아동학대가 비일비재한 아동친화도시라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어른들이 만든 서류상 정책이 아니라 아이들의 몸과 마음을 지켜줄 진심어린 약속이 필요하다.
◇ 아이는 누가 길러요?
아이가 태어나면 가정의 시계는 아이중심으로 변하고 첫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모든 것이 두렵고 낯설다. 아이는 어떻게 돌봐야하고 키워야 하는지 도움이 간절하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육에 대한 선택권이 없다. 지금까지 보육정책은 시설과 운영 중심으로 지원해왔고 수요자와 이용자의 입장을 고민하지 못했다. 나라에서는 0세에서 7세까지 대부분 공·사립 어린이집에 맡기라고 한다. 아동학대 사건이 계속 발생하면서 ‘어린이집’ 말고도 보육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없는지 궁금해진다.
또래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어울려 놀며 아이를 키울 수도 있고, 마을의 커뮤니티 공간을 빌려 품앗이 육아를 할 수도 있다. 부모들이 직접 어린이집을 운영할 수도 있다(부모협동어린이집 또는 공동육아협동조합어린이집). 아이를 키우는 방법은 다양하다. 맞벌이 부모가 아니라면 굳이 온종일 아이를 맡기는 어린이집이 아니라도 부모들이 아이들을 함께 돌볼 수 있는 다양한 커뮤니티들을 만들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다양한 선택이 가능하려면 아이를 데리고 맘 편히 갈수 있는 곳이 많아지고, 공동육아나 품앗이를 하려는 부모를 연결하고, 마을에서 아이를 함께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 되야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울산 동구에는 구마다 있는 '공동육아 나눔터'도 하나 없다. 장난감 도서관이나 육아종합지원센터가 있지만 이용하고 오는 시설이라 여전히 엄마가 놀아줘야 해서 몸이 더 피곤하다. 아이를 낳고 육아를 하며 가장 간절했던 것이 잠깐의 휴식과 위로의 말이었다. 늦둥이 막내를 낳고 몸과 마음이 힘들었지만 작은도서관에서 사람들을 만나 책모임을 하고 밥을 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힘을 얻었다. 외롭지 않았고 멈춘 것 같던 나의 시간도 다시 흘렀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마을은 공간의 개념이 아니고 아이는 부모 혼자 키우는 게 아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는 머리를 맞대야 한다. 부모 또는 양육자, 지역사회, 행정부처와 함께 보육과 돌봄에 관해 다양한 방법들을 얘기하는 열린 대화의 통로들이 생겨나야한다.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과 어른들이 꿈꾸는 세상이 같아지려면 부모들과 양육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함께 목소리 내고 바꿔가야 한다.
자동차 광고에서 아이에게 물었던 꿈에 ‘착한사람’이라는 대답은 아이가 어른들에게 말하는 따끔한 충고다. 사회는 감시가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여야 하고 아이들을 출산율로 볼 것이 아니라 생명으로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해야한다. 아이는 신뢰할 수 있는 어른들이 만든 안전한 사회에서 자라야 한다.
*칼럼니스트 노미정은 중학생 둘에 늦둥이 다섯 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울산 동구의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동육아·마을공동체를 고민하며, 함께 읽고, 쓰고, 밥도 먹는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우리가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위해 지금 나부터 ‘꿈틀’하고 있다.
출처 : 베이비뉴스(https://www.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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