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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7 경향신문] 엄마·아빠들의 '부모협동형 유치원’ 도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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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9-11-25 13:55 조회83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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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하와 민서가 9월 3일 경기 오산시에 있는 육아공동체 ‘숲이랑 놀자’에서 손수 꾸민 악기 ‘마라카스’를 흔들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재하와 민서가 9월 3일 경기 오산시에 있는 육아공동체 ‘숲이랑 놀자’에서 손수 꾸민 악기 ‘마라카스’를 흔들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10분 쉬었다 할까요?” “애들 가만히 있을 때 계속하시죠(웃음).” 

주말인 지난 8월 31일 오전 경기 화성시 미디어센터 미팅룸. 동탄에 사는 엄마·아빠 10여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유치원에 다닐 만한 또래 아이들도 함께였다. 화이트보드에는 자그마치 14개 안건이 적혀 있었다. 비등기이사 결정, 서기 결정, 설명회 일정 및 방법, 규정·규약 집중검토, 리모델링 철학 정하기, 원장 채용…. 

“교구·교재나 공기청정기, 가구업체에서 전화 와서 ‘페이백’(상품을 살 때 낸 돈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것) 제안을 해요. 사립유치원이 왜 돈을 잘 뽑아먹을 수 있는지 알겠더라고요. 저희와 전혀 맞지 않는 부분이라 거절했습니다. 우리가 사회적협동조합인 걸 모르더라고요. 유치원 법인 아니냐고 묻던 걸요.” ‘왕자’라는 이름표를 붙인 4살·5살 아이의 아빠, 장성훈 아이가행복한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37)이 회의를 이끌었다. 부모들은 서로 ‘도니’ ‘아라’ ‘미니’ ‘동아줄’ ‘옹달샘’ 등 별칭을 부르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부모였던 이들은 내년 3월 개원을 목표로 ‘유치원’을 만들고 있다. 

‘사립유치원 사태’ 후 믿고 맡길 곳 고민 

발단은 지난해 말 벌어진 사립유치원 사태였다. 동탄에서 원비로 원장 아들 대학 입학금과 개인 소유의 차량 할부금을 내는 등 유치원 회계부정이 다수 드러났다. 장 이사장은 당시 동탄의 학부모들이 꾸린 ‘동탄유치원비상대책위원회’ 대표였다. “원장님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지원금이 우리 아이들 배를 따뜻하게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고 외치던 장 이사장은 ‘협동조합 유치원’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몇몇 부모들도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유치원 설립에 동참했다. 이전까지 사립유치원을 운영하려면 유치원 부지와 건물을 소유해야 했다. 지난해 11월 부모들이 출자금을 내고 만든 사회적협동조합이 정부와 공공기관 시설을 임차해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 길이 열렸다. 화성시가 동탄2신도시에 짓는 이음터 건물 일부를 임대해주기로 했다. 이음터는 학교가 부지를 제공하고, 지자체가 돈을 들여 지은 건물로 학생과 지역주민들이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다. 

내년 3월이면 5학급, 원아 90명이 다닐 유치원이 문을 연다. 학부모들이 아무 기반 없이 손수 유치원을 만든 최초의 시도다. 지난 3월 개원한 서울 노원구의 꿈동산아이유치원이 1호 부모협동형 유치원이지만, 기존 설립자가 사망해 폐원 위기에 놓인 유치원을 임차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협동형 유치원과 유사한 형태의 협동형 어린이집은 전국 150여곳에서 운영 중이다. 교육·급식·안전 부문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이고 있다. 

아이가행복한사회적협동조합에는 18개 가정의 부모 36명이 활동 중이다. 이 가운데 6개 가정의 아이들 10명가량이 올 3월 시작한 육아공동체 ‘숲이랑 놀자’에 참여한다. 부모들은 십시일반으로 동탄 인근 오산시에 공간을 마련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본다. 지향점은 발달과정에 맞춘 ‘적기교육’. 서로 존중하고 아이들에게 친근감을 주기 위해 별칭을 쓴다. 공동육아는 내년 2월이면 끝난다. 단, 육아 철학은 고스란히 유치원으로 이어진다.
 

운영은 투명하게, 교사도 대우받게 

“월요일에 업무분장표가 싹 날아갈 거예요. 열심히 해주시고! 지난주 업무분장표 완료율은 90%.”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해서 체계가 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총회 밑에 이사회가 있고, 맞벌이·교육·기획·운영위원회로 나눠진다. 조합원은 반드시 1개 이상의 소위원회에서 활동해야 한다. 유치원 이름은 시민 공모전을 통해 접수된 이름 가운데 선정할 계획이다. 조만간 외부 전문가들과 심사위원회를 꾸려 원장도 채용한다. 10월에는 유치원 설명회를 진행하고 11월부터 원아를 모집한다.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할 수 있는 제2의 공간도 찾기로 했다. 유치원 개원까지 할 일이 수두룩하다. 단체 채팅방에서 잠시 눈을 떼면 메시지가 수십 개씩 쌓여 있을 때가 많다. 유치원이 문을 연 이후에도 사진, 아동심리, 글쓰기 등 각자의 능력을 유치원 운영에 보탤 예정이다. 

어디서 이런 열정이 나올까. “아이들 때문이죠.” 부모들은 하나같이 대답했다. 본업에 조합 운영, 조기축구회 총무까지 본다는 장 이사장은 “내년 3월만 생각하면 힘든 건 다 잊을 수 있다”고 말했다. 4살 민서 엄마이자 ‘산’이라 불리는 엄누리씨(30)는 “아이가 밖에서 많이 뛰놀면서 스스로 느끼고 경험하고 결정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며 “무엇보다 공동육아를 해보니 아이가 좋아한다. 아이 때문에 그런 힘도 나오는 것”이라고 했다. 

‘꽃분이’ 박혜진씨(33)의 가장 큰 고민은 아이의 먹거리였다. 다섯 살배기 아들 재하의 아토피 증상이 워낙 심해서다. 새 유치원은 아토피가 있는 아이를 위한 식단도 따로 제공할 계획이라 안심이 된다. “아이의 상황을 배려하지 않으면 늘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하거든요. 부모들이 아이가 먹을 수 있는 걸 같이 고민할 수 있으니 그게 고맙고 큰 힘이 되죠.” 

조합원들이 지난 8월 31일 경기 화성시 미디어센터에서 유치원 설립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노도현 기자

조합원들이 지난 8월 31일 경기 화성시 미디어센터에서 유치원 설립 관련 회의를 하고 있다. /노도현 기자

모든 회계자료는 투명하게 공개한다는 것이 새 유치원의 원칙. 행정은 ‘경력보유 여성’인 엄마들에게 맡기고 교사들이 본연의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교사 월급도 평균보다 2~3호봉 높게 주고 근무·휴게시간을 철저히 지킬 방침이다. 정규수업은 오후 5시까지.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은 오후 7시까지 머물 수 있다. 유치원 원비는 월조합비까지 28만원 수준이다. 장 이사장에 따르면 동탄지역 사립유치원 원비는 방과후 과정까지 포함해 40만~50만원 선이다. 장 이사장은 “사립유치원 예·결산서를 많이 들여다봤는데 유치원 원장, 간부들 월급이 1000만원이 넘었다. 우리는 순수하게 줄 것만 주고 베풀 것만 베풀며, 모자르지는 않게 가려고 한다”고 했다. 

이원혁 조합 대외이사(36)는 본보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우리(부모협동형 유치원)가 모든 사립유치원의 대체재가 될 순 없지만 우리가 잘하면 다른 유치원도 알아서 원칙을 지킬 거라고 봐요. 저기도 저렇게 하는데 우리도 해보자, 좋은 영향을 주는 거죠.” 

지역공동체에 뿌리내리는 일도 부모협동형 유치원이 풀어야 할 숙제다. 일부 주민들은 유치원이 공공시설 일부를 쓰는 데 반감을 보이고 있다. 한 조합원은 “우리 공동체만 잘살 수는 없는 일”이라며 “우리의 진정성 있는 활동이 지역사회와 함께 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교육청은 부모협동형 유치원을 유치원 공공성 확대를 위한 좋은 대안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부모들이 유치원을 설립하려면 ‘맨땅에 헤딩’해야 하는 실정이다. 공간 확보와 비용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학부모들이 낸 출자금만으로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선 협동형 유치원을 ‘공영형’ 유치원과 연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교육청이 재정을 지원하는 대신 공립 수준으로 회계를 투명하게 관리하는 방식이다. 장 이사장은 “분명 학부모들이 움직이면 바뀔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학부모들만 똘똘 뭉쳐서 될 일은 아니다”라며 “협동 유치원을 위한 매뉴얼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09071644021&code=940100#csidx8ef8137637449a4acd8d00361ce994d onebyone.gif?action_id=8ef8137637449a4acd8d00361ce99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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