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7 시사인] 전국 곳곳에 이런 아파트가 생겨만 준다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0-08-10 14:29 조회935회 댓글0건본문
원문 링크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403
6월29일부터 입주에 들어간 위스테이 별내는 한국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아파트다. 숱한 오해와 고비를 넘겨가며 탄생했다. 공공성 강한 모델이 계속 확산될 수 있을까.
경기도 남양주시에는 특별한 아파트가 있다. 22층 7개 동, 491가구(전용면적 60㎡, 74㎡, 84㎡ 세 가지 주택형) 규모의 위스테이(WESTAY) 별내. 한국 최초의 협동조합형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그동안 10여 세대의 소규모 협동조합주택은 등장했다. 협동조합 방식으로 대규모의 아파트가 선보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위스테이 별내는 2018년 8월에 청약을 받았다. 청약 최고 경쟁률은 55대 1. 평균 경쟁률은 6.4대 1을 기록했다. 6월29일부터 입주에 들어갔다. 입주민은 협동조합 가입비·출자금·임차보증금과 월 임차료를 낸다.
이 금액을 환산해 주변 시세와 비교하면 80% 안팎 수준이다(입주민이 이사를 가면 출자금과 보증금은 환불받는다). 사회적 기업 ‘더함’이 사업 주관을 하면서 개발비용과 시행사 마진을 줄였다. 그 절감분은 임대료를 낮추는 데 활용했다. 임대 기간은 2년이고, 8년 동안 살 수 있다. 임대차계약 갱신 시 5% 범위 내에서 임대료가 변경된다.
협동조합형 아파트라고 뭐가 다를까? 입주를 며칠 앞둔 6월24일, 위스테이 별내를 찾았다. 무엇보다 아파트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커뮤니티 시설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규모는 953평. 법정 기준 대비 2.5배에 이른다. 커뮤니티 시설을 구비하는 데 30억원을 투자했다.
‘육아 친화형’을 표방해 아이들 놀이터와 잔디광장을 단지의 중앙에 배치했다. 커뮤니티 시설 이름 앞에는 ‘동네’라는 단어를 붙였다. 아파트 주민들이 차를 마시고 모임을 가질 수 있는 동네카페·동네부엌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시설이 늘어섰다. 동네카페 옆에 3∼6세 미취학 아이들을 돌보는 동네키움방, 초등학생 돌봄 공간 동네자람터가 붙어 있다. 통유리를 사용해 동네카페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훤히 볼 수 있다. 동네빨래터(빨래방)에는 이불 세탁이 가능한 대형 세탁기·건조기, 운동화 세탁기가 들어섰다. 여기에서 생기는 수익은 커뮤니티 관리비로 쓰인다. 동네책방(마을도서관)에는 책 5000여 권이 채워졌다. 1, 2층인데 장애인 입주민을 배려해 엘리베이터를 설치했다. 앞으로 입주민을 사서로 채용해 운영할 계획이다. 동네체육관(헬스장 등)에는 커뮤니티 운영비로 상주 트레이너를 채용한다. 비 올 때 운동할 수 있도록 실내체육관에 농구대·탁구대를 들여놓았다. 음악연습 장비가 마련된 동네방송국, 보드게임방, 목공 프로그램을 열고 공구를 무료로 빌려주는 공구도서관 등등 커뮤니티 시설이 다양했다. 공구도서관 모습을 촬영하던 조남진 사진기자가 “공구도서관, 참 부럽네”라고 옆에서 중얼거렸다.
이런 커뮤니티 공간은 시행사나 시공사가 계획·디자인한 게 아니다. 위스테이 별내 사업주관사인 더함의 김종빈 이사는 “입주 전부터 조합원들이 아파트 공간 기획에 참여했다. 예비 입주자 576명이 9개월 동안 마흔여섯 번 모임을 가졌다. 많은 분들이 머리를 맞대고 결정했으니 공간에 대한 애정이 높을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이 아파트는 모델하우스부터 특별했다. 통상 아파트 분양 시 사업지 인근에 모델하우스를 짓고, 분양이 끝나면 폐쇄한다. 더함은 위스테이 별내의 모델하우스를 서울 명동에 지었다. 모델하우스를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명동에 짓는다니! 소관 부처인 국토교통부 담당자가 당황스러워했다. 모델하우스 위치를 왜 명동으로 정했을까? 더함 측이 보기에 여러모로 이익이었다. 계산해보니 기존 방식으로 모델하우스를 짓는 데 40억원이 든다. 대개 1년 정도 단기로 땅을 빌리고 모델하우스를 짓고 허문다. 그렇게 한 해 평균 100여 개에 이르는 모델하우스가 지어졌다가 사라진다. 더함은 위스테이 별내, 위스테이 지축 두 개의 시행 사업을 동시에 진행했다. 통합 모델하우스를 지어 시차를 두고 이용하면 비용을 훨씬 줄이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그 공간을 모델하우스 용도뿐만 아니라, 시행 작업 이후에도 시민들이 빌려 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아이디어였다. 명동 부지를 주차장으로 쓰던 한국YWCA에서도 취지에 흔쾌히 동의했다. 그렇게 명동에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이 등장했다. 일회용으로 쓰일 뻔했던 모델하우스가 예비 입주민과 시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난 것이다. 실제로 위스테이 별내 예비 입주자들도 ‘마실’에서 커뮤니티 공간 기획회의 등 여러 차례 소모임을 했다.
사회적 경제가 금융·부동산 문제 풀어야
양동수 더함 대표(44·변호사)는 마실·위스테이 별내 탄생의 주역 중 한 명이다. 변호사가 왜 아파트 시행에 나서게 되었을까. 그는 2009년부터 난민·이주민·장애인·탈북자 등을 지원하는 공익 인권변호사 활동을 해왔다. 로펌 변호사의 프로보노 활동(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개인 혹은 단체에 대해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관리하고, 사회적 경제 영역의 제도 개선·입법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왔다.
양동수 변호사는 사회적 경제 관련 강연도 많이 했다. 유럽에서 사회적 경제 영역 단체들이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하게 활동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관심사였다. 그가 보기에, 해법은 ‘(시민·공동체) 자산화’였다. “사회적 경제가 지속 가능하게 발전하려면, 지역마다 앵커 시설(도시재생의 마중물 구실을 할 핵심 시설)을 자산화하는 게 중요하다. 금융·부동산 문제를 풀지 못하는 사회적 경제는 대안이 되기 어렵다. 부동산 문제를 사회적 방식으로 풀어내는 사회적 기업가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녔는데, ‘그럼 당신이 한번 해보라’는 말이 나오더라(웃음).”(양동수 대표)
사회적 경제 영역의 법·제도 개선 지원활동을 하는 동시에, 사회혁신기업 더함(더불어함께의 줄임말)을 만들었다. 사회적 경제·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결합했다. 그러다가 박근혜 정부 후반기에 기회가 찾아왔다. 당시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사업계획(‘뉴스테이’ 사업)이 나왔다. 무주택 중산층 서민의 주거 안정을 위한 사업이었다. 임대료 상승을 일정 범위로 제한하고 최소 8년 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양동수 대표는 이 뉴스테이에 협동조합을 결합한 사업 모델을 국토교통부에 제안했다. 2016년 12월 제한적 경쟁입찰을 통해 더함이 공모사업 주관사로 선정되었다(위스테이 별내, 위스테이 지축).
위스테이 별내의 사업구조는 이렇다. 총사업비는 2000억원. 이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땅을 사고 아파트를 짓고, 개발기간(3년)·운영기간(8년) 동안에 필요한 총비용이다. 사업비의 20%(400억원)에 해당하는 부동산 투자회사 ‘임대리츠’를 만든다. 이 회사에 주택도시기금이 320억원을 출자하고, 더함이 80억원(건설사·자산관리회사 각 10억원 출자분 포함)을 출자한다. 나머지 사업비는 기금 융자, 민간 차입(주택도시보증공사 보증), 임차인 임대보증금으로 충당한다. 아파트 입주 시점에는 입주민들로 구성된 사회적 협동조합이 주택도시기금의 출자금 일부와 더함 등의 지분을 인수하게 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아파트를 주택도시기금 7, 위스테이 별내 사회적 협동조합 3의 비율로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세입자는 임차인인 동시에 조합원으로서 아파트를 간접 소유하는 모양새다.
양동수 대표는 “기존 법령과 금융제도를 연구해 안전한 사업구조를 설계했는데도 고비가 많았다”라고 말한다. 이 사업을 진행하려면 더함이 60억원을 마련해야 했다. 양 대표는 국토교통부에 ‘입주민의 25%를 선모집하겠다’고 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협동조합형 아파트의 특성상 커뮤니티,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이들이 필요했다. 비영리나 사회적 경제에 종사한 사람, 공동체 주택을 경험한 사람 등으로 선정했다. 입주 이후에 ‘커뮤니티 리더’ 구실을 할 이들이다. 두 번째, 초기 출자금으로 자금 형성에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이렇게 모인 123세대의 출자금으로 30억원이 마련됐다. 나머지 30억원이 문제였다. 양동수 대표는 “4년 전만 해도 사회적 금융이 열악한 수준이었다.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 십시일반으로 모아보려고 이 조직 저 조직을 다 만나보았는데 여의치 않았다. 시민사회계의 몇몇 분이 취지에 공감하고 무이자로 빌려주었다”라고 말했다.
위스테이 별내의 ‘소프트웨어’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협동조합형 임대아파트’. 건설사와 금융회사를 만나 설득하는 것도 큰일이었다. 건설사는 최종 결정 단계에서 사업 진행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협동조합으로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더함이 직접 건설사 대표를 찾아가 브리핑해 ‘사업구조의 안정성’을 설명해 위기를 넘겼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한 금융회사 간부는 양동수 대표에게 이렇게 조언하기도 했다. “대표님, 앞으로 명함에 괄호 치고 ‘변호사’라고 꼭 적으세요. 이쪽 업계에 워낙 ‘사짜’들이 많아서, 새로운 방식의 일을 벌인다면 잘 믿지를 못합니다.”
오해와 고비를 넘겨가며 첫 번째 협동조합형 임대아파트가 탄생했다. 마음고생이 얼마나 컸을지, 전체 과정을 옆에서 지켜본 송경용 신부(한국사회가치연대기금 이사장)의 페이스북 글에 나타난다. (‘양동수, 여전히 소년티가 나는 변호사 출신, 김준호 부대표를 비롯한 그 동료들, 몇 년 동안 사기꾼 소리 들어가며 큰일 해냈다. 양동수 대표가 며칠 전에 밤늦게 집에 들어가서 뜻을 이루어냈다는 생각에, 그동안의 고생이 생각나 감격에 겨워 부인을 붙들고 우는데 엄마·아빠가 울고 있으니 아이들도 영문을 모른 채 같이 울다가 큰아이가 “아빠, 망했어?”라고 묻는 통에 더 울고 싶었는데 웃을 수밖에 없었단다.’)
한 사회적 기업의 노력 끝에 하드웨어는 완성되었다. 협동조합형 아파트가 정착하기 위해서 중요한 건 소프트웨어다. 위스테이 별내는 커뮤니티 관리에 각별한 관심을 두고 있다. 공간 디자인에 입주민들이 참여한 게 그 시작점이다. 통상 아파트 시설관리 비용으로 세대당 2만7000여 원이 책정된다. 다른 일반 아파트의 경우, 이런 관리업무를 하도급, 재하도급해 맡긴다. 그러다 보면 실제 쓰이는 비용이 줄어들어 시설관리 등 최소한의 업무만 하게 된다.
위스테이 별내에서는 더함의 100% 자회사 ‘스페이스 잇다’가 협동조합과 함께 시설·임대·커뮤니티 관리를 한다. 출자금·보증금 등 2억7300여 만원을 낸 34평형(84㎡) 입주자를 예로 들면, 임차료 10만원(커뮤니티 관리비 5만원 포함)을 낸다. 세대당 시설관리 비용과 커뮤니티 관리비를 합하면 세대당 거의 월 8만원에 가까운 돈을 커뮤니티 조성·관리에 쓸 수 있다. 이는 양질의 커뮤니티 관리 서비스의 기반이 된다.
이 아파트의 커뮤니티 활동이 얼마나 활발해질지는 조합원들의 참여에 달려 있다. 입주자들은 의무적으로 협동조합 기본교육을 받아야 한다. 예상 밖의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토론하고 조정하기 위해 ‘갈등조정위원회’ 등 여러 입주민 위원회를 구성한 이유다.
위스테이 별내, 위스테이 지축은 국토교통부 시범사업으로 출발했다. 위스테이 별내는 입주가 시작되었고, 비슷한 사업모델이 적용된 위스테이 지축(539가구)은 2022년 1월 준공 예정이다. 공공성이 강한 이 모델이 좀 더 확산될 수는 없을까? 양동수 대표는 ‘단발성 실험’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한다. “현재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16만 호 건설이 예정돼 있다. 계속 공모가 나올 텐데, 지금의 심사 기준으로는 이런 방식의 아파트 건설 제안은 탈락하기 쉽다. 현재는 건물 설계, 건설사의 재무신용도 등을 주요 심사 기준으로 삼는다. 심사 기준에 공동체 활성화에 대한 계획 등을 포함하게 되면 일반 건설사나 사업자들도 훨씬 커뮤니티 친화적인 아이디어를 가지고 올 것이다. 지금 심사 기준대로라면 정말로 한 차례의 시범사업으로 멈추게 된다. 심사 기준에 변화가 필요하다.”
6월24일, 위스테이 별내를 방문한 기자들에게 양동수 대표는 이렇게 되물었다. 만약 전국에 10만명이 이런 아파트에 살게 된다면 우리 사회에 어떤 변화가 올까요? “혁신적 공간을 통해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하고, 새로운 주거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덧붙인 말이다.
차형석 기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