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성산동 ‘채비움 서당’ 이민형 훈장

 

지난 18일 성미산에 오른 이민형 훈장 뒤로 그가 직접 설치한 빗물 저장통이 보인다. 저장통의 물은 작은 비닐 호스를 따라 아래 옹달샘으로 흐른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지난 18일 성미산에 오른 이민형 훈장 뒤로 그가 직접 설치한 빗물 저장통이 보인다. 저장통의 물은 작은 비닐 호스를 따라 아래 옹달샘으로 흐른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이민형(48) 채비움 서당 훈장은 2012년부터 서울 마포구 성미산 자락에서 동양 고전을 가르치고 있다. 서당 이름은 채우려면 비워야 하고 비우면 채우는 게 공부라는 뜻에서 지었다. 지금은 초등생 다섯에게 <사자소학>과 <천자문>을, 성인반은 <논어>를 가르치고 있다.
지난 8년은 그가 성미산을 탐구하며 돌본 시간이기도 하다. 해발 66m인 성미산은 어디든 10분 이내에 갈 수 있는 도심 속 작은 산이다. 그는 먼저 물이 흐르지 않는 산에 옹달샘과 빗물 저장통을 만들어 새나 산짐승들이 목을 적시게 했다. 새들이 먹이를 찾기 어려운 늦가을부터 봄까지는 견과류나 지방류를 모아 새 모이로 내주었다. 성미산에 오기 전에 농사를 지었던 오대산의 더덕이나 원추리 구근류를 옮겨심기도 했다.

 

“지난 8년 성미산에 새들이 두배 정도 늘어 지금은 40종가량 됩니다. 천연기념물 솔부엉이와 멸종위기종인 새호리기, 파랑새 같은 맹금류도 보여요. 얼마 전엔 왕새매도 처음으로 관찰했죠. 전에는 맹금류는 없었어요.”

 

이민형 훈장이 8년 전 만든 성미산 옹달샘.  사진 이 훈장 제공
이민형 훈장이 8년 전 만든 성미산 옹달샘. 사진 이 훈장 제공

 

새끼들에게 보리수 열매를 먹이고 있는 직박구리 성체. 지난 18일 이민형 훈장이 성미산에서 찍었다.
새끼들에게 보리수 열매를 먹이고 있는 직박구리 성체. 지난 18일 이민형 훈장이 성미산에서 찍었다.
지난 18일 서당에서 이 훈장을 만났다. 그는 최근 성미산을 관찰하고 기록한 지난 시간을 정갈하고 따스한 언어로 풀어낸 책 <성미산 이야기>(도반)와 한자 108자를 직접 쓰고 글자마다 마음 명상의 이야기를 담은 책 <108가지 마음찾기>(도반)를 함께 펴냈다.

 

“저기 옹달샘 근처 은사시나무 중간에 난 구멍이 솔부엉이 둥지 입구이죠. 솔부엉이는 주로 밤에 활동해요. 일반 등산객 눈에는 절대 띄지 않아요. 10월이 되면 따듯한 베트남으로 날아갑니다.” 인터뷰 사진 촬영을 위해 산에 같이 오른 이 훈장은 지난 8년 산의 변화를 미소를 머금고 설명했다. “이건 더덕이죠. 5년 차 더덕 씨앗을 제가 심었는데 새들 덕분에 그 씨앗이 여기저기 퍼졌어요.” 그와 함께 산에 올라 새 모이를 주고 청소를 해온 마을 주민 20여명은 지난해 비영리단체 ‘산다움’을 만들었다. 이 훈장은 성미산 생태복원을 위한 이 단체의 ‘고문’이다.

 

 

이민형 훈장이 지난 18일 성미산에서 자라고 있는 더덕의 잎을 만지고 있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이민형 훈장이 지난 18일 성미산에서 자라고 있는 더덕의 잎을 만지고 있다. 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그는 하루 평균 5시간가량 성미산에서 산다. 손에는 늘 카메라를 쥐고 있다. 책에는 그가 두세 시간씩 숨죽이며 기다리다 찍은 인상적인 새 사진들이 여럿 실려 있다. 인터뷰 몇 시간 뒤에도 직박구리가 보리수 열매를 새끼들에게 먹이는 모습을 포착하기도 했다.

 

“아침 일찍 집에서 새소리를 들으면 어떤 새이고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 알 수 있어요. 처음 2년간은 잘 몰랐어요. 촬영 3년 차부터 이를 악물고 새 동선을 따라다녔어요. 그러다 둥지를 만들던 쇠박새와 눈이 마주쳐 사진을 찍었어요. 새들은 이동 경로가 비슷해 한 종의 동선을 읽히면 다른 새들은 쉽게 알 수 있죠. 성미산 참새는 600마리 정도 됩니다. 산쪽과 마을 언저리 두파로 나뉘죠.”

 

새들이 늘어난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우선 새 모이 주기로 겨울철 먹이 공급이 원활해졌어요. 이전에는 말라비틀어진 아까시나무 씨앗이나 잡풀 정도만 먹었죠. 또 옹달샘 주변에 작은 새들이 잡아먹는 딱정벌레나 곤충류가 늘어난 덕도 있죠. 샘 근처에 되지빠귀 같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알을 낳더군요.”

 

그의 아내는 공동육아 활동가인 진선경 성미어린이집원장이다. 30대 후반에 결혼하고도 한동안은 오대산에서 명이나물을 키우고 서당 훈장을 하며 주말부부로 살았단다. 그러다 아내 권유로 어린이집 학부모들에게 자연생태인문학 강의를 하면서 성미산으로 삶터를 옮겼다.

 

 

8년간 매일 해발66m 야산 5시간 돌봐
물·먹이 주니 솔부엉이 등 조류 40종

관찰·탐구·촬영 ‘성미산이야기’ 펴내
주민 20명 ‘산다움’ 꾸려 생태복원 활동

 

 

중학시절 건강 약해 서예·한문 공부
“아이들과 야외수업 ‘호연지기’ 키워”

 

 

<성미산 이야기> 표지.
<성미산 이야기> 표지.
그가 서당 훈장을 한 지도 올해로 21년이다. 구제금융위기 때 가족과 함께 이주한 오대산 자락 진부면에 만 27살 때 ‘진부 서당’을 열었다. “박동춘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이 운영하던 과천서당에서 20대 초부터 15년 가량 한문과 동양 고전을 공부했어요.” 도회지인 경기 안양에서 나고 자란 그가 한학을 한 데는 건강 문제가 컸다. “중3 때 폐질환인 기흉으로 수술을 여섯 번이나 했어요. 그때 화원을 하시던 부모님이 저에게 ‘할 게 뭐가 있겠느냐, 조용히 글공부를 하면 좋겠다’며 서예 학원을 보내셨어요. 그렇게 한문 공부를 시작했죠. 모친은 경기도 첫 불교 여성 포교사이셨죠.”

 

그는 대한민국미술대전에서 특선 수상을 하고 초대전과 개인전을 13차례나 한 서예가이다. 만 32살에 대전대 서예과에 들어간 것도 이런 입상 경력을 인정받아서다. “출가를 결심하고 상원사에서 마지막 발원을 하던 중에 모친한테 저도 서예 대회 수상으로 대학 입학 자격이 있다는 말을 듣고 산에서 내려왔죠. 대학생들이 잔디밭에서 기타 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많이 부러웠거든요.” 사진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고 하자 그는 한때는 사진작가를 꿈꾸기도 했다며 웃었다. “스무살 무렵 안양에서 동네 사진관 사장님한테 3년 정도 배웠어요. 그때 집에 암실도 만들고 흑백필름을 인화하는 기계도 샀죠.”

 

이민형 훈장이 찍은 성미산의 솔부엉이 수컷.
이민형 훈장이 찍은 성미산의 솔부엉이 수컷.
서울에서 훈장으로 사는 삶은 어떨까? “성미산 지역에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몇 개 있어요. 사람들이 서로 나눠 보육을 해요. 초등생과 중고생은 방과후 교실이 있고요. 이 아이들이 주로 서당을 다녀요.” 아이들이 글 공부에 흥미를 느끼냐고 하자 “글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안 된다”고 손사래를 쳤다. “교감해야죠. 아이들이 말하는 언어와 놀이문화, 먹거리를 저도 공유합니다. 그다음에 거칠고 나쁜 것을 조정해주죠. 야외수업도 한 달에 두 번 해요. 생태수업이죠. 거기서 팔자게임이나 얼음땡 같은 놀이도 하고 가끔은 떡볶이를 같이 만들어 먹기도 해요.”

 

자연 속 공부는 고전 인식의 확장으로 이어진단다. “산에서 자연을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고전을 설명하는 것은 학문적인 일반 강의와 달라요. 자연의 개방된 공간에서 배우면 사고방식이 유연하고 넓어집니다. 호연지기이죠.”

 

그가 성미산 생태복원에 나선 것은 ‘산이 건강해야 사람도 건강하다’는 생각에서다. “오대산에 살 때 아침에 느낀 상쾌함과 신선한 공기를 늘 기억합니다. 도심에 사니 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더군요. 산에 물이 흐르고 울창하면 지표면이 열도 덜 받고 대기 오염물질을 분산시켜 공기도 정화해주죠. 공기 흐름도 빠르게 해주고요. 성미산만 해도 여름철 밤이면 서늘한 바람이 내려와요.”

 

 

성미산 주민과 아이들이 산에 올라 도토리 열매를 심고 있다.  이민형 훈장 제공
성미산 주민과 아이들이 산에 올라 도토리 열매를 심고 있다. 이민형 훈장 제공

 

이민형 훈장이 찍은 성미산 원경 사진.
이민형 훈장이 찍은 성미산 원경 사진.
그는 대학을 나온 뒤 월정사 박물관에서 근무하면서 서지학 연구자의 길을 꿈꾸기도 했다. 지난 8년 성미산을 관찰하고 기록한 것도 연구라고 생각한단다. 앞으로는 마포구의 다른 산으로 연구 대상을 넓히려 한다. “얼마 전 성산2동 새터산에 갔더니 청설모가 있더군요. 거긴 사유지가 많아 수종이 성미산보다 다양해요. 마포의 다른 작은 산들도 함께 조사해 그 공간의 독창성과 생물 다양성을 확인하려고 해요. 그리고 산을 산답게 만드는 일을 찾아야죠. 또 성미산의 상징 동물은 솔부엉이, 새터산은 청설모로 하자고 동장과 주민자치위원장에게 제안도 하려고요.”

 

그가 마음 속에 늘 새기는 글귀는 <논어> 첫 머리에 나오는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 불역열호(不亦說乎)!’다. ‘배우고 때때로 읽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란 뜻이다. “오대산 진부면에 살 때 밭일을 하는데 주변 사찰인 지장암 주지 스님이 저에게 뭐하냐고 물어요. 그래서 ‘호미로 돌을 고르고 또 고르고 있어요. 이렇게 좋은 밭을 만들면 뭐든 잘 자라겠죠’라고 답했어요. ‘배울 학’에서 ‘좋은 밭을 만들려면 갈고 또 갈아 고른 밭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농부의 책무다’라는 가르침을 얻어요.” 인터뷰 끝에 이런 말도 했다. “제 노력으로 생긴 자연의 변화를 보는 즐거움이 커요. 그런 의미에서 성미산은 제 스승이죠.”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