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28 베이비뉴스] 놀이를 배우는 시대… ‘진짜 놀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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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0-07-09 17:02 조회848회 댓글0건본문
원문링크 : https://www.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5928
우리는 언제 놀아요?ⓛ] 정회진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아동팀장
놀이를 빼앗긴 대한민국 아이들. 놀이라는 ‘권리’를 되찾아주기 위해 우리 사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서울시 아동 놀이권 조례 제정을 위한 시민연대’의 연속 특별기고로 놀이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 - 편집자 말
아이들의 시간에서 ‘놀이’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베이비뉴스
아이들의 시간에서 ‘놀이’ 자체가 사라지고 있다. 아이들이 모두 학원에 가서 놀이터에 나가도 놀 친구가 없단 얘기를 들은 지는 오래됐다. 절대적인 놀이 시간과 놀이 공간이 부족하다. 그와 함께 ‘진짜 놀이’도 사라져간다.
다른 편에서는 놀이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2019년 개정 누리과정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교사 주도 활동을 지양하며, 유아가 충분한 놀이 경험을 통해 몰입과 즐거움 속에서 자율 창의성을 신장하고 전인적 발달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어린이집 평가제에도 ‘영유아의 권리 존중 및 놀이 중심 보육과정 운영’이 반영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놀이를 빙자한 학습이 대세다. 장난감 대신 ‘교구’라는 용어가 흔해졌고 가베 같은 ‘교구’를 활용해 놀이처럼 학습한다. 비싼 교구를 잘 활용하려고 방문교사를 부르기도 한다. 엄마들이 모이는 지역 인터넷 카페에 가면 ‘우리 아이 세 살인데 좋은 가베 선생님 좀 소개해 주세요’라는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또 많은 놀이가 수업이나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고 있다. 종이접기도 수업으로 하고, 레고도 선생님에게 배운다. 요즘은 산엘 가도 생태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 모든 프로그램은 어른인 선생님이 이끈다. 오죽하면 ‘놀이학교’가 생겼을까. 놀이도 선생님에게 배우는 시대다.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서울에서 품앗이 공동육아를 하던 분들을 만나 경험담을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이 이끌어주는 놀이(?)를 마치고 헤어지려는데, 아이들이 묻더란다.
“이제 놀아도 돼요?”
그제야 부모들은 뭔가 잘못됐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자유롭게 놀 시간을 주는 것으로 충분했다고도 했다. 그렇다. 놀이는 학습의 도구가 아니다. 놀이가 ‘학습도구’로 전락해 재미도 없고 배움도 사라진 것은 아닐까? 그냥 놀게 하면 아이들은 저절로 배우지 않을까?
공동육아놀이 ©분당 세발까마귀어린이집 제공
◇ 진짜 놀이는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것
그러면 아이들의 ‘진짜 놀이’는 어떤 모습일까?
올 1월 어느 추운 날, 한양대학교에서는 500여 명의 어린이집 교사들이 모인 가운데 “놀면서 자라고 살면서 배우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이 열렸다. 공동육아 교사들은 아이들의 다양한 ‘자유놀이’ 사례를 발표했다. 그중 한 어린이집 교사는 ‘철봉’ 하나로 아이들이 어떻게 노는지 보여줬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은 대부분 아이들이 야외에서 다양한 놀이를 할 수 있는 마당을 갖추고 있다. 이곳도 마당이 있고 마당 한쪽엔 모래밭도 있으며, 흙 마당과 꽃밭도 있다.
마당엔 몇 년 돼 제법 키가 큰 포도나무가 세 그루가 있었다. 교사들은 포도나무를 지탱하기 위해 가로, 세로로, 철로 된 봉을 연결해 지지대를 만들어줬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철봉을 지켜보다가 올라가고 싶어 했다. 오르고 싶어 하는 다섯 살 아이에게 선생님은 철봉에 올려주는 대신 ‘나무도 잘 오르잖아’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용기를 내 철봉에 올라 몇 센티미터 올라갔다 내려온 아이는 작은 성공을 기뻐하며 더욱 즐겁게 철봉 오르기에 몰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아이들도 조금씩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급기야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 있는 놀이가 되었다. 아이들은 키보다도 높은 철봉을 조금씩 타고 올라가 꼭대기에 매달리기를 반복하며 즐거워했다. 놀이는 점점 더 번져 이제는 2~3세 동생들도 오르기를 시도했다.
발표를 지켜보던 이들은, 2세 아이가 형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자기도 오르기 위해 일단 양말부터 벗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며 모두 웃음이 터졌다. 아직 요령도 없고 팔과 다리의 힘도 부족한 어린아이들은 미끄럼틀을 철봉에 가까이 밀고 와 그 위에 올라가 철봉에 매달리기도 했다.
더 높이 오르고 싶으면 동생들은 선생님, 형, 언니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다. 큰 아이들은 작은 아이들을 번쩍 들어 올려 매달릴 수 있게 해줬다. 자연스럽게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다.
그뿐인가. 5세 아이들은 어느 새 그냥 오르고 이동하는 것이 시시해졌는지 새로운 미션을 만들어냈다. ‘물통주머니 철봉 꼭대기에 매달고 내려오기.’ 처음부터 물통주머니를 들고 올라가는 게 힘들다는 걸 알게 된 아이들은 먼저 올라가고 다른 친구에게서 물통주머니를 건네받아 매달기도 했다.
‘물통주머니 미션’이 어려운 동생들은 점퍼를 걸고 내려오기도 했다. 사진으로 본 아이들의 표정에는 즐거움과 성취감과 희열이 가득했다.
철봉놀이 ©강동 재미난어린이집 제공
◇ 놀이에도 아이들의 삶과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이 모습을 영상으로 보고 발표로 들으며 많은 어린이집 교사들이 함께 울고 웃었다. 아이들은 어떻게 몇 개월이나 이 놀이에 몰두할 수 있었을까?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놀이였기 때문이 아닐까?
이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이고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놀이 속에는 아이들의 도전과 성취, 실패와 좌절, 모험이 있다. 놀이에는 나이도 상관없다. 5세든, 3세든, 철봉에 잘 오를 수 있는 신체 능력이 있든 없든 아이들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놀 수 있었다.
그뿐인가.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서로를 적극적으로 돕기도 했고 상대방의 성공에도 함께 기뻐했다. 이렇게 ‘진짜 놀이’를 하는 어린이집 아이들은 하원 시간에 엄마가 오면 도망가 숨는다. 왜? 더 놀고 싶으니까.
그럼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무얼 할까? 교사들은 용기를 주고 믿음의 눈으로 놀이하는 아이들을 지켜봐준다. 그리고 아이들이 놀이하며 느끼는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한다. 그것으로 족하다.(또 있다. 일부 교사는 철봉놀이를 하는 다수 말고 다른 놀이를 하는 아이, 혼자 있는 아이와 함께였을 것이다.)
진짜 놀이는 아이들이 만들어간다. 40년 전 공동육아를 시작했던 정병호 선생님이 어린이날을 맞아 공동육아 식구들에게 들려준 황근남 시인의 시구가 떠오른다.
내 작은 기도 하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즐겁게 노는/ 아이들만의 꽃밭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 것
우리도 아이들에게 작은 꽃밭 하나 내어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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