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25 영남일보] [3040칼럼] 어느 공동육아 협동조합의 총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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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지하철 작성일15-02-22 02:16 조회2,620회 댓글0건본문
내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를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키우겠다는 공동육아 협동조합
마침내 총회가 끝났다. 총회장을 나온 조합원들의 피곤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장장 7시간의 마라톤 회의였으니 모두 지치고 피로한 상태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뒤풀이 하러 가야지요”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는 대부분 손사래를 칠 것인데 “어디로 갈까요”라며 맞장구를 치는 소리가 나온다. 그리고는 곧 무리를 지어 근처의 국밥집으로 향한다. 시간은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시쳇말로 참 ‘징한’ 사람들이다.
회의는 오후 8시부터 시작됐다. 초반에는 나름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전임 이사진의 사업결산이 보고될 때만 해도 가벼운 질문과 대답이 오갔고 심심찮게 농담도 나왔다. 신입 조합원들과 신임 이사진이 소개될 때는 연이어 웃음소리가 터질 정도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올해 새롭게 추진될 사업계획을 신임 조합장이 안건으로 상정하면서 회의장의 분위기는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큰 예산이 들어가는 어린이집의 대대적 보수의 건에서 격론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조합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그것을 일일이 설명하고 이해시키기 위한 신임 이사진의 답변도 이어졌다. 결국 고성이 터졌다. 제대로 검토를 한 사업이기나 한 것이냐며 조합원들과의 충분한 공유도 없이 밀어붙이는 것 아니냐는 힐난이 이어졌다. 이쯤 되면 감정적인 충돌이 일어날 법도 한데 또 그렇지는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지친 표정의 조합원이 늘어났지만 회의는 계속됐다. 몇 번의 정회를 거듭하면서 시간은 자정을 넘어갔지만 회의는 끝나지 않았다. 올해 새로 들어온 신입 조합원들은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야말로 ‘멘붕’상태에 빠진 표정이었다.
결국 이사회에서 올린 대대적 개보수의 건은 부결되고 재논의를 거치기로 했다. 이사회에서는 사업계획을 보완해서 다시 총회를 열어야 한다. 이사회와 교사회 사이에 여러 번의 임금협상 끝에 합의된 사항도 부결됐다. 이사진은 다시 선생님들과 재협상을 해야만 한다.
예산안 검토에서는 항목별로 조목조목 질문들이 쏟아졌다. 나 또한 3년차가 되는 조합원이지만 아직도 복잡한 숫자의 예산안 표를 읽어내지 못한다. 그래서 그 복잡한 예산안에 대해 세세하게 질문하고 답변하는 모습을 보면 놀라울 정도다. 회사의 재정담당보다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들 같다. 결국 예산안도 부결됐다. 예산안도 다시 짜야한다. 이렇게 치열하게 총회를 하는 이 사람들은 공동육아를 하는 협동조합의 부모들이다.
이익배당을 받는 주주도, 월급을 받는 기업의 이사들도 아닌데 이렇게 치열하게 공격하고 안간힘을 다해 방어하며 문제점이 없는지를 면밀히 검토하는 이유가 뭘까. 직장에서의 업무스트레스도 과중할텐데 아무런 보수도 없이 이 사람들은 대체 왜 이런 처절한 논쟁과 노고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내 아이가 아닌 우리의 아이를,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키우겠다는 일념 때문이다. 그래서 동네에서 길을 가다 무심코 만나는 아이도 남의 아이가 아니고 어느 구석진 모퉁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사람도 남이 아닌 우리의 이웃인 세상을 꿈꾸기 때문이다. 동네에서 만나는 남의 아이는 모두 내 아이의 경쟁상대가 되고 동네에서 만나는 그 어떤 사람도 그저 남이거나 긴장해야 하는 세상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학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온 마을 사람들이 필요하다. 마을에는 이웃이 필요한 것이지 건조한 표정으로 지나치는 남남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국밥집으로 향하는 무리 속에서 한마디가 툭 터져 나온다. “오늘 너무 일찍 끝난 거 아니에요?” 아, 이 사람들 정말로 징하다.
이병동 씨프로덕션 대표·CF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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