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면서 느낀 건, 즐겁고도 힘들다는 것이었죠.”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고민했을 육아 문제. 결혼 4년차에 네 살배기 딸이 있는 김경미(28) 씨는 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4년간의 체험을 이렇게 한 마디로 풀이했다. 젊은 엄마, 김 씨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맞벌이 부부다. 4살 된 딸을 어린이집에 맡기는 것도 마음이 불편한데 최근 책상 모서리에 입이 부딪혀 앞니가 멍든 딸아이, 은솔이를 볼 때마다 속상하다는 그. 그 역시 일과 육아 문제를 두고 많이 고민을 했었다고 털어놨다. “우리 때만 해도 7살 정도에 어린이집을 갔잖아요. 우리 은솔이는 엄마하고 있어야 할 시간이 많아야 할 나이인데, 벌써부터 어린이집에 보낼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 마음이 아프죠. 어린이집을 보내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하지만, 부모 입장에선 금전적인 어려움이, 또 아이에겐 아이 나름대로의 스트레스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 집에서 노는 모습을 보면 힘들어 하는 게 보이거든요. 별 것 아닌 일에 아이가 짜증낸다든지, 소리에 심하게 놀란다든지 하는...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빠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저한테 일을 그만두라고 말할 때도 있어요. 어린이집에 가기 전엔 시부모님들이 봐주셨는데 할아버지, 할머니가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봐주시지만 갑자기 일이 생기거나 하면, 제가 회사를 조퇴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죠. 그럴 때마다 일을 계속 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을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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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말 김철수 기자 |
그렇다면 4살 은솔이에게 들어가는 한 달 교육비는 얼마일까. 어린이집에 보내는 비용, 보험, 적금, 책값 등등 다른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월 80만원이 들어간다고 한다. 남보다 조금 먹이고, 덜 입히고 한다면 이 금액 보다는 줄 수 있겠다. 하지만 중요한 건 아이에게 들어가는 교육비는 돈 액수에 상관없이 모든 부모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경미 씨는 내년엔 수영과 발레 학원에 은솔이를 보낼 예정이라고 전했다. 역시나 재정적인 측면을 고려하면 걱정은 태산이다. 하지만 아이가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돈 때문에 안 보낼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 대부분 엄마들의 마음 아닌가. “내 아이만큼은 더 좋은 것 입히고, 더 나은 것 배우게 하는 게 모든 엄마들의 마음 아닌가요. 사실 여자가 일할 수 있도록 회사에서 지원하는 어린이집 같은 것이 많고,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육아 보조금 등의 제도를 부여 받는 대상을 좀 더 넓힌다면 이러한 엄마들의 고민들을 조금은 덜 수 있지 않을까요? 은솔이가 4살이고, 이제 둘째도 낳아야 하는데... 이런 생각하면 정말 키우기가 막막해요.” 어쩌면 현재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아이를 가진 엄마라면 이러한 고민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은영(28) 씨도 그렇다. 한 씨는 이제 백일을 갓 넘은 딸아이를 가진 엄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보육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왔었다고 토로했다. 한 씨는 현재 시댁에 아이를 맡기고 키우는 실정이나 올 여름이 지날 무렵이면 집에서 혼자 키울 예정이다. 아이를 얻은 것은 큰 축복이지만, 앞서는 고민은 역시나 육아로 인한 경제 문제다. “남편이 혼자 경제적인 수입을 마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걱정이 많이 되죠. 때문에 불가피하게 직장생활을 저도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막연한 것이 사실이에요. 특히나 시댁에서는 서른 살 전에 둘째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씀하셔서 부담이 되기도 하구요. 아이 하나 키우는 것도 쉽지 않은데 둘이라고 한다면 부부가 맞벌이 하지 않고서는 답이 없지 않나요?” 과연, 백일을 갓 넘은 아이 엄마의 이 고민이 ‘너무 이른’ 고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초등학생 자녀 2명을 둔 이 모(35) 씨는 경험으로 느낀 육아에 대한 고민을 자연스레 이미 한국 사회에 넓게 포진되어 있는,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으로 드러냈다. “사교육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아예 학원 전부를 없애는 것으로 말이죠. 실직자들이 늘어날 수도 있겠지만, 각 가정마다 사교육비 부담이 큰 건 사실이지 않습니까. 월급쟁이 해봐야 교육비 때문에 저축도 못하고, 노후관리는커녕 힘들게 일만 하다가 늙어 죽을 지경이잖아요. 부모들이 너도 나도 나서서 특별하고 아주 좋은 학원에 보내도록 만들지 말고, 방과 후 수업 형태로 학교에서 저렴하게 현재 학원에서 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시행했으면 좋겠어요.” 차별화된 보육 공동육아,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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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가족의 책임으로만 한정시킬 수 없다는 것은 이처럼 사회 공통의 인식이 됐다. 동시에 맞벌이 부부의 증가, 핵가족화 및 저출산이 지속되면서 다양한 사회집단과 계층의 아이를 위한 다양한 보육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사실 7,80년대에 비하면 현재의 보육 사업은 양적으로 늘어난 면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보육 시설의 질적 수준 나아가 신뢰도 측면에선 미비한 것이 사실이다. 전체 보육 수요 아동의 절반가량이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기존 보육시설의 전반적인 이용률은 85%로 낮다. 더구나 맞벌이 부부들은 영아를 보육할 곳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아이들의 보육시설 이용률은 71%밖에 되지 않는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보육제도와 시설이 양적이든 질적이든 각 가정의 부모들 모두를 충족시켜주고 있지 못한 것과 함께 제기되는 것은 ‘교육의 질’ 문제였다. 현 유아교육, 보육의 문제는 자연이 배제된 인공적인 환경, 높은 교사 대 유아의 비율, 지식 위주의 과잉 조기교육이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그런 고민 속에서 새로운 보육 욕구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탄생한 것이 ‘공동육아’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공동육아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일정한 보육료를 내고 아이만을 맡겼던 기존 어린이집과는 달리, 0~10세까지의 아동을 둔 2~30여 가구가 한 지역 조합의 단위가 되어 가구당 300~700만원의 출자금을 내어 근처에 큰 마당이 있는 집을 얻어 부모가 직접 설립하고 운영에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보육 시설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1978년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보육시설을 운영했던 소규모의 부모들이 시작한 공동육아. 현재는 전국적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이 61개, 방과 후 교실 18개, 저소득지역 방과 후 교실이 5개(서울 4곳, 성남 1곳), 대안초등학교가 1개로 확대됐다. 회원 수만 3,000여 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기존 어린이집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운영 형태가 일단 다르고 교육 프로그램도 확연히 차이가 난다. 우선 공동육아는 자연친화적이고, 공동체적이며, 체험 중심의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산 말고 월드컵공원 가고 싶어.” “아니, 아니 나는 한강가고 싶은데.” “얘들아~ 산에 가면 못 보던 꽃들을 볼지도 몰라.” 집 앞 마당에선 선생님과 아이들의 토론(?)이 한창이다. 오전 10시에 가는 나들이 장소를 두고 논의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공동육아 시설인 <우리 어린이집>의 목요일 아침 일과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곳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 7세, 가장 어린 아이가 3세이다. 7세 나이의 아이들 6명은 결국 월드컵공원을 가는 것으로 합의를 본 모양이다. 우르르 집 안으로 들어가 제각각 채비를 하더니 신발을 신고 신나게 달려 나온다. 반면 3~4세 아이들은 가까운 성미산에 가기로 결정했다. 5~6세 아이들은 집에 남아 목걸이를 직접 만드는 학습을 하기로 했다. 나들이를 쫓아가보니, 확실히 체험중심의 교육이라는 것을 실감케 한다. 산에 가는 길은 어른 걸음으로 불과 5분 정도의 거리. 하지만 가는 데 15분이 걸렸다. 지나가는 차량을 피한다든가, 주의를 준다든가 하는 시간 때문이 아니라 길목에 있는 사물 하나하나가 학습의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주택 담장에서 뻗어 나온 도라지꽃을 설명해주면서 ‘엇, 언제 저렇게 자랐지. 와 신기하다. 그렇지?’, 또는 횟집 수족관에 있는 우럭 앞에 모여 앉아 ‘와. 얘, 신기하게 생겼다. 얘 이름이 뭔지 아니?’ 라고 ane는 등 아이들에게 관찰의 시간을 충분히 갖게 한다. 결코 제지가 없다. 나들이는 보통 10~12시까지 2시간을 하게 되는데, 아이들이 지루해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자연을 느끼는 것에 익숙해진 느낌이랄까. 산 초입 밭에 심어져 있는 콩, 옥수수 등을 보는 눈빛도 (비록 3~4세이지만) 남다르고, 애기똥풀을 꺾어 줄기 사이에서 나오는 액을 손톱에 제 먼저 칠하고 또 선생님에게 칠해주기도 했다. 3~7세 아이들이 제 각각 나들이를 가는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여느 학부모라면, 혹 이렇게 먼저 선생님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취학 전 아동, 즉 7세 아이들에게 이런 자연체험학습이 꼭 필요한 것인가’하고 말이다. 즉 시대에 맞추려면 한글은 기본이고, 영어까지 당연히 가르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선생님들에게 따져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다른 공동육아 어린이집 모두 문자 교육을 하지 않는다. 물론 아예 안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문자를 배우고 싶은 욕구가 있을 때는 가르쳐주지만 일부러 수업을 만들어 주입식 문자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아이와 선생님간의 호칭과 대화법도 남다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에 아이들은 선생님의 별칭을 부른다. ‘물방울’, ‘풀’, ‘강아지’ 등이다. 존칭 역시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들과 대등하게,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 원칙이라면 원칙인 셈. 예를 들면 “물방울, 나 목걸이 만들었어. 예쁘지?”, “강아지, 뽀송이(미국 나방 유충) 봤어” 등이 이들의 대화 방식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다니는 기간 동안에는 다른 사교육도 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어린이집 교사들이 부모에게 하기도 한다. 어린이집을 다니는 만큼은 몸으로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자는 취지에서다. 이러한 공동체적인 학습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현재는 이러한 프로그램이 일반 어린이집까지 확산, 시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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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말 김철수 기자 |
그렇다면 공동육아 어린이집 운영 원칙은 어떠할까. 앞서 언급했듯이 아이의 부모들이 1년에 300~700만원(이는 어린이집으로 일반 가정집을 구하기 때문에 지역 전세금 시세에 따라 달라진다)이라는 출자금을 통해 운영이 이루어지게 된다.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저소득층 가정에게는 이 금액이 높은 장벽이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실제 입원을 하고 싶지만 꺼려하는 가정이 있는가하면, 어려운 가정 형편이지만 대출을 받아 아이를 입원시키는 경우도 있다. 자칫 특정 아이들만을 위한 교육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설명이다. 특별한 교육 프로그램 때문에 일반 어린이집을 보내는 것보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된다면 부유층 가정의 부모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사무국의 곽영선 홍보부장은 ‘차등보육료’에 대해 설명하면서 “어린이집 내에서 회의를 통해 공감을 얻고, 가정 형편에 따라 출자금을 내자고 제안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이 제안이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현재 하나의 방편이 공적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곽 부장은 “예를 들면 어린이집을 1000만원에 임대를 했고, 5명의 부모가 200만원씩 출자를 했다면 아이가 졸업할 때 그 200만원을 찾아가는 것이 현재의 시스템이다”라며 “그러나 향후엔 출자금 모두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집 자체를 ‘사회 재산으로 만들자’는 운동으로 200만원 중에서 150만원만 가져가고 50만원을 기부하는 형태를 만들려 하고 있다. 이러한 운동이 이뤄진다면 저소득층 가정에게도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육 공공성 강화를 위한 대안은 있는가 한국 사회에서 아동에 대한 사회적 보호는 매우 취약한 실정이다. 빈부격차 심화, 양극화 현상은 고스란히 아동들에게도 전가되고 있고, 사회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의 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취학 전 아동에 대해 일부 공적 보호가 있었다고 해도 국공립 보육시설은 전국적으로 시설기준 6% 미만, 아동수 기준 12% 정도에 그치고 있다. 결국 이러한 현실에서 봤을 때 어쩔 수 없이 대안으로 탄생한 것이 ‘공동육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즉 공동육아가 아동의 권리신장과 복지서비스의 확대, 여성의 사회참여 촉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동시에 빈부격차와 양극화의 상황에서 취약계층의 보호 등을 모두 해소할 수 있는 보육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명확한 방안이라곤 볼 수 없다. 다만 (공동육아가) 공공성 확대 선상에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어린이집에서 생활하는 아이만이 공동체 삶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직접 어린이집 운영에 참여함으로써 공동체 경험을 하게 되고 또 잘 몰랐던 ‘육아문화를 공유’ 할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낮잠을 몇 시에 재워야 좋은지, 무엇을 먹일 지, 대청소는 언제 다 같이 모여 할 지,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아마’(아빠와 엄마를 줄여서 부르는 말)들은 다소 귀찮은 토론 내용에 참여해야만 하는 숙제를 짊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아마’들이 내 아이만 보지 않게 되고, 남의 아이도 함께 보살피게 되는 너그러움까지 자연스럽게 익히는 효과가 있다. 또 집에서 아이와 단 둘이 있을 때 어떻게 놀아줘야 할 지 몰랐던 ‘아마’는 이 곳에서 만나는 다른 여러 ‘아마’들과의 교류로 육아문화를 함께 공유하는 계기를 만들고 있다. 보육의 사회적 방임은 필연적으로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 가중, 여성의 사회참여 기회의 제한을 가져오고 있다. 특히 사교육 시장을 이용하기 어려운 빈곤계층 및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같은 현실은 결국 아동의 사회적 보호를 위한 마땅한 대책 없이는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도, 저소득층의 지원과 보호도, 가계의 사교육비 부담 완화도 달성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확인해주는 꼴이다. (정부를 향한) 국공립보육시설의 증설, 초등학교 병설유치원 확대 및 방과 후 아동 보호 시스템의 확립 등과 같은 아동의 사회적 보호를 위한 대책, 보육의 공공성 확대를 위한 과제요구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단 문제는 ‘부모들이 직장에서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건’을 마련해주는 방안, 혹은 정책이 정확히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명쾌한 해답을 내놓을 수 있는 대안은 아직 없다는 것 아닐까. -박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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