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을 넘긴 노인이 총 6권 분량의 방대한 육아 교육서를 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우리 아이 어떻게 키울까''를 번역 출간한 84세의 이학선씨가 그 주인공. 일본의 진보적 유아교육기관인 오사카보육연구소가 지은 이 책들에는 1세에서 6세까지 아이들의 나이에 맞춰 꼭 필요한 육아정보가 담겨 있다.

이씨가 처음 이 책을 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인 1997년. 보육시설 현장 연구를 위해 2년간 일본에 체류했던 아들 정병호(52)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귀국하면서 건넨 ''연령별 보육강좌''를 통해서다. 정 교수는 사단법인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공동대표로 활동 중인 공동육아 운동가다.

모친인 이씨는 이미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 일본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이야기'' 등을 번역 출간한 바 있다. 정 교수에게서 건네받은 이 책의 내용을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싶다''는 생각에 번역을 시작했다고 한다.

70대 초반 나이에 꼬박 3년간 일일이 손으로 옮겨 적은 원고는 공책 24권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1300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라 선뜻 나서는 출판사를 찾기가 힘들었다. 출판을 포기하고 ''공동육아를 하는 부모나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자료집으로라도 활용하겠다''고 생각하던 차, 완성한 지 7년여 만에 비로소 세상에 나올 수 있게 됐다.

이 책들에는 일본에서 공동육아를 하는 어린이집 교사, 부모, 연구자들이 여러 해 동안 아이들을 돌보면서 치밀하게 관찰하고 고민한 결과가 담겨 있다. 2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우리보다 한 세대 전에 사회보육제도를 세운 일본의 보육 운동가들의 경험은 지금 우리 학부모들에게 소중한 가르침이 된다.

1세에서 6세까지 나이별로 1권씩 실린 책 속에는 막 태어나 옹알이를 하던 아이가 말을 하기까지, 엄마 젖을 먹던 아이가 채소와 과일, 고기를 먹게 되기까지 아이의 발달사항을 자세히 기록하고,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밝히고 있다. 각권마다 공통된 내용으로 1장에서는 각 나이의 특성과 발달모습을 기록하고, 2장에서는 나이에 맞는 보육계획을 알려준다. 3장에서는 건강, 음식, 생활습관, 놀이 등을 설명하고, 4장에선 어린이집 교사와 부모가 해야 할 일들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5장 ''궁금해요''에서는 손가락을 빠는 아이, 말을 더듬는 아이, 텔레비전에 중독된 아이 등 아이들에게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해방 전에 황해도 신계 심상소학교에서 교사를 하기도 했던 이씨는 경기도 과천에서 ''이야기 할머니''로 통하는 유명인사다. 97년부터 지난해까지 10여년간 과천의 공동육아 어린이집 두 곳에서 매주 두차례씩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며 얻은 별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당뇨로 인한 백내장 때문에 눈수술을 세차례 받으면서 ''이야기 할머니''는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 아니다"라는 그는 인세 대신 받은 책들을 전국 66곳의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기증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이들에 대한 이학선씨의 애정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아직도 옛날이야기를 듣던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는 이씨는 "눈 때문에 더 이상의 번역은 힘들겠지만 건강이 회복되는 대로 다시 아이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이학선 할머니가 전하는 나이별 육아상식

이 세상에 태어난 아이는 새로운 몸짓과 표정, 감정과 말을 익히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난다. 첫돌이 지나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자립해가는 아이들. 그러나 아이가 커갈수록 부모의 책임은 더욱 무거워진다. 이학선씨가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나이별 육아상식의 핵심을 소개한다. 한살 보호해야 할 존재 한살 아이는 어른과 신나게 놀 때 몸 전체가 골고루 발달한다. 태어난 지 1개월반이 되면 아이는 얼러주는 어른의 눈을 바라보며 웃는 ''신나는 반응''을 하는데, 이것이 의사소통의 바탕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얼러주고 몸을 흔들어주며 ''잼잼'', ''곤지곤지''를 하면서 많이 놀아주는 것. 이 시기에 아이와 제대로 놀아주지 않으면 표정 없는 아이로 자라거나 손으로 사물을 다루는 능력이 늦게 발달하기도 한다. 두살 말이 꽃피는 시기 두살은 아이들의 말이 눈부실 만큼 느는 시기. 아이들은 손가락 운동과 말이 함께 발달하므로 손 운동을 많이 시키고, 걷기 시작하면 미끄럼틀 오르기, 층계 내려가기 등 온몸 운동도 시키는 것이 좋다. 어른들의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는 두살 아이에게 꼭 시켜야 할 것이 숟가락 교육 등 물건을 쓰임새에 맞게 쓰도록 하는 것. 물건을 제대로 쓰는 아이들이 말도 잘 할 수 있다. 세살 위대한 흉내쟁이 세살 아이는 자기 주위의 어른들이 하는 행동을 흉내 내려 하는 흉내쟁이가 된다. 어른들의 몸짓을 흉내 내고 짓궂게 장난을 치면서 손과 손가락이 정교하게 발달해간다. 또한 세살 때는 독립된 인격이 싹트는 시기. 어른들이 하는 말에 무조건 "싫어"라고 말할 때 아이들에게 억지로 예의범절을 가르치거나 행동을 억제하기보다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 세계를 이해하며, 마음을 나눠야 한다. 네살 유아독존의 시기 네살은 역할놀이가 꽃피는 시기다. 집단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역할놀이를 통해 자신에게 눈을 뜨게 된다. 아빠놀이, 엄마놀이, 교사놀이 등에서 서로 자기가 주인공이 되려는 아이들은 자주 부딪히기도 하는데 이때 한 사람 한 사람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정리하는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또한 걷고 달리고 뛰는 온몸 운동에 눈 뜨는 시기이므로 자주 나들이를 하며 몸을 단련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다섯살 자아에 눈뜨는 시기 다섯살 아이는 놀이에 푹 빠져서 놀아야 한다. 집단놀이 속에서 서로 생각을 나누고 경험을 주고받으면서, 사귀는 친구들 속에서 자신에 대해 깨닫게 된다. 다섯살 아이의 놀이 속에는 아이들을 이어주는 매개물이 필요하다. 물을 가지고 놀거나 모래밭에서 놀면서 자동차놀이, 병원놀이 등 어른의 일을 흉내 내는 놀이 속에서 경험을 풍부하게 키워간다. 이때 어른들은 아이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줘야 한다. 여섯살 놀이에서 공부로 여섯살 때는 아동기를 맞이하는 시기로 앞으로의 발달에 매우 중요한 때다. 또한 학교에 들어가기 바로 전 나이이기 때문에 제대로 발달할 수 있도록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우선 4월 초에는 아이들의 발달 정도와 친구관계를 잘 관찰하며, 여름에는 물놀이를 많이 하고 부모 품을 떠나 친구들과 합숙활동을 시켜본다. 가을에는 운동회를 열어주면 규칙이 있는 체육 동작을 연습함으로써 규칙과 생활습관을 익히고 자기 행동을 조절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된다. 겨울에는 연극놀이 등 발표회를 하면서 어린이집을 졸업하는 마음가짐을 갖도록 한다.   942호 [인터뷰] (2007-08-10)   박윤수 / 여성신문 기자 (birdy@women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