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보통합'보다 더 절실하게 보육 현장에서 요구해 온 과제는? 기고=최진이 2023.06.08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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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06-08 10:21 조회346회 댓글0건본문
교사가 머리를 숙이고 있다가 간신히 고개를 들고 말한다. “죄송해요.” 울고 왔는지 눈두덩이가 부어있다. 모두 깜짝 놀랐던 터라 누가 죄송하고 괜찮고 할 문제는 아니었다. 다만 아이가 무사해서 너무나 다행이고 감사한 상황이었다.
나들이 다니기 좋은 날씨가 한창이다. 밖에서 실컷 뛰어놀다 들어온 아이들 얼굴은 상기돼 있고 모자를 벗은 머리는 땀에 젖어 촉촉하다. 표정이 밝고 반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만 0세부터 만 5세까지 모든 반이 나들이를 갔다가 들어오는 표정은 모두 한결같다.
나들이를 무사히 마치고 모두 반으로 들어가 점심 먹을 준비를 하는데 업무차 밖에 나갔던 행정교사가 사색이 되어 들어온다. 행정교사는 만 2세 원아의 손을 꼭 잡고 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달려나가 아이를 꼬옥 안는다. 아이는 울지도 않고 가만히 안겨 있는다. 품에 안은 채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속으로 되뇐다.
아이 손을 잡고 만 2세 반으로 들어갔다. 점심 준비에 한창이던 2명의 교사 눈이 동시에 휘둥그래진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와 아이를 꼬옥 안아주는 모습을 보며 문을 닫고 나왔다.
만 2세 아이들이 나들이에서 돌아온 시간부터 지금까지 5~6분 남짓됐을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위의 상황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현장의 모습이다. 혹은 오늘 일어났다고 해도, 매일 일어난다해도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다. 이 일은 교사의 무능함이나 아이의 기질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러나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나들이가 아이들한테 좋은 건 알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알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갈 용기가 쉽게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당분간은 나들이 시간을 축소하거나 실내 활동으로 대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두려움을 이기고 꼭 밖으로 나가라고 교사의 등을 떠밀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교사들에게 초인이 되라고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사 한 명에게 7명의 자유분방한 친구들을 맡기면서 그들이 스스로의 성향대로 자랄 수 있도록 각자에게 개별적인 지원을 하며, 충분한 바깥놀이를 제공하는 동시에 신체가 다치지 않고,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돌보라고 한다.
교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하는 자신에게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 번씩 찾아오는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혀 좌절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한다.
유능한 교사들이 상처받고 좌절하며 그동안 쌓아 올린 자신의 수고를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꼭 필요하다. 여러 측면의 보완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교사 대 아동 비율 낮추기’라 말할 수 있겠다.
산과 들로 떠난 현장학습.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현장학습.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요즘 보육 현장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은 ‘유보통합’이다. ‘유보통합’이라는 말이 20년 전부터 나오던 말이라고 하는데 ‘교사 대 아동 비율’에 대한 문제 제기도 유보통합이라는 말만큼 오래된 현장의 요구다. 어린이집 현장의 일원으로 유보통합은 잘 모르겠다. 살아보지 않고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바람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유보통합보다 더 절실한 현장의 문제는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는 문제라고 명확하게 주장할 수 있다.
유보통합은 영유아 보육-교육의 틀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각 유형별 목소리를 내며 각 유형이 취할 수 있는 득과 실을 따져보기도 한다. 틀을 새로 만들 때 지금보다 나은 구조를 만드는 건 중요하다. 각 유형별 목소리를 내는 데에 있어 어떤 유형이든 공통적으로 더 나은 구조의 바탕이 되는 건 무엇보다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는 시범사업을 만 0세와 만 3세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면 만 1세와 만 2세 또한 비율을 낮추는 일이 너무나 시급하고 필요한 일이다.
만 1세는 교사 1명당 5명의 영유아를 돌보게 된다. 15개월부터 26개월의 아이들 10명은 2명의 교사가 돌보는 것이 국가 기준이다. 만 2세는 교사 1명당 7명의 영아를 돌보게 된다. 투담임이라면 14명의 영아를 2명의 교사가 돌보는 것이 지금의 국가 기준이다.
많은 교사들이 매일매일 무사히 만 1~2세 영아들을 만나고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체로는 사고없이 잘 보내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사고에 대비하려고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라는 주장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더 나은 보육-교육을 위해, 교사의 안전을 위해, 부모의 안심과 만족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나들이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상호작용의 질을 높이고, 교사의 피로도를 낮춤으로 인해 전반적인 보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사단법인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 소속돼 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란 부모의 출자로 운영되며 부모가 어린이집 운영의 많은 것을 맡는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10년 정도 교사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교사 대 아동 비율’이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내가 있었던 어린이집에서는 만1세의 경우 교사 1명이 3명의 아이들을 맡거나 교사 1명과 보조교사 1명을 두고 4명의 아이들을 돌보았다. 나들이를 많이 다니는 어린이집의 특성상 나들이 안전을 위한 부모들과의 합의였고 교사회의 요청이었다. 만2세의 경우는 5명을 넘지 않았고 2반을 구성할 경우 8~9명을 2명의 교사가 맡아서 보육하였다.
교사 대 아동 비율로 인한 재정적 부담은 부모들이 나누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과 교사에게 필요한 지원이라고 모든 부모들이 동의했다. 교사는 여유가 있었으며 아이들도 교사의 여유를 배울 수 있었다.
모든 어린이집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처럼 지낼 수는 없다. 하지만 출생률이 낮아진 지금,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기는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이다.
예산 문제로 빠른 시행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예산이란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다. 인구 감소가 사회적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영유아를 위한 지원의 폭을 넓힘으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는 일은 사회 모두의 바람이지 않을까.
앞에 이야기했던 사건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교사는 부모에게 연락해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고 부모는 아이가 무사히 돌아온 사실에 감사하고 늘 애써주시는 교사의 노고에 감사했다. 부모의 감사하다는 말에 교사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상황을 모두 보고받은 후 어떻게 해서든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 글은 그러한 다짐의 결과이다.
우리의 매일매일이 해피엔딩은 아니다. 생각하기 싫지만 상상할 수 있는 나쁜 결말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의 운이 좋았다고 내일도 운이 좋을 거라 생각할 수 없기에 마음이 급하다.
*이 글은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정책위원 최진이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최진이 님은 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교사로 10여 년 일하다가 최근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위탁체인 국공립어린이집에서 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출처 : 베이비뉴스(https://www.ibabynews.com)
나들이 다니기 좋은 날씨가 한창이다. 밖에서 실컷 뛰어놀다 들어온 아이들 얼굴은 상기돼 있고 모자를 벗은 머리는 땀에 젖어 촉촉하다. 표정이 밝고 반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이 가볍다. 만 0세부터 만 5세까지 모든 반이 나들이를 갔다가 들어오는 표정은 모두 한결같다.
나들이를 무사히 마치고 모두 반으로 들어가 점심 먹을 준비를 하는데 업무차 밖에 나갔던 행정교사가 사색이 되어 들어온다. 행정교사는 만 2세 원아의 손을 꼭 잡고 있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달려나가 아이를 꼬옥 안는다. 아이는 울지도 않고 가만히 안겨 있는다. 품에 안은 채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속으로 되뇐다.
아이 손을 잡고 만 2세 반으로 들어갔다. 점심 준비에 한창이던 2명의 교사 눈이 동시에 휘둥그래진다. 하던 일을 멈추고 달려와 아이를 꼬옥 안아주는 모습을 보며 문을 닫고 나왔다.
만 2세 아이들이 나들이에서 돌아온 시간부터 지금까지 5~6분 남짓됐을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위의 상황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현장의 모습이다. 혹은 오늘 일어났다고 해도, 매일 일어난다해도 이해 못할 상황은 아니다. 이 일은 교사의 무능함이나 아이의 기질과는 무관한 일이다. 그러나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나들이가 아이들한테 좋은 건 알지만, 아이들이 좋아하는 건 알지만,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갈 용기가 쉽게 생기지 않을 것 같다. 당분간은 나들이 시간을 축소하거나 실내 활동으로 대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러한 두려움을 이기고 꼭 밖으로 나가라고 교사의 등을 떠밀 수는 없는 일이다.
어쩌면 우리는 교사들에게 초인이 되라고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교사 한 명에게 7명의 자유분방한 친구들을 맡기면서 그들이 스스로의 성향대로 자랄 수 있도록 각자에게 개별적인 지원을 하며, 충분한 바깥놀이를 제공하는 동시에 신체가 다치지 않고,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돌보라고 한다.
교사들은 어떻게 해서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하는 자신에게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한 번씩 찾아오는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혀 좌절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한다.
유능한 교사들이 상처받고 좌절하며 그동안 쌓아 올린 자신의 수고를 스스로 무너뜨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도적 보완이 꼭 필요하다. 여러 측면의 보완이 필요하겠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교사 대 아동 비율 낮추기’라 말할 수 있겠다.
산과 들로 떠난 현장학습.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현장학습.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요즘 보육 현장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말은 ‘유보통합’이다. ‘유보통합’이라는 말이 20년 전부터 나오던 말이라고 하는데 ‘교사 대 아동 비율’에 대한 문제 제기도 유보통합이라는 말만큼 오래된 현장의 요구다. 어린이집 현장의 일원으로 유보통합은 잘 모르겠다. 살아보지 않고 겪어보지 않은 일이라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바람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유보통합보다 더 절실한 현장의 문제는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는 문제라고 명확하게 주장할 수 있다.
유보통합은 영유아 보육-교육의 틀을 바꾸는 일이다. 그래서 각 유형별 목소리를 내며 각 유형이 취할 수 있는 득과 실을 따져보기도 한다. 틀을 새로 만들 때 지금보다 나은 구조를 만드는 건 중요하다. 각 유형별 목소리를 내는 데에 있어 어떤 유형이든 공통적으로 더 나은 구조의 바탕이 되는 건 무엇보다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는 시범사업을 만 0세와 만 3세를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면 만 1세와 만 2세 또한 비율을 낮추는 일이 너무나 시급하고 필요한 일이다.
만 1세는 교사 1명당 5명의 영유아를 돌보게 된다. 15개월부터 26개월의 아이들 10명은 2명의 교사가 돌보는 것이 국가 기준이다. 만 2세는 교사 1명당 7명의 영아를 돌보게 된다. 투담임이라면 14명의 영아를 2명의 교사가 돌보는 것이 지금의 국가 기준이다.
많은 교사들이 매일매일 무사히 만 1~2세 영아들을 만나고 무사히 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체로는 사고없이 잘 보내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한 사고에 대비하려고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하라는 주장하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더 나은 보육-교육을 위해, 교사의 안전을 위해, 부모의 안심과 만족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나들이 안전사고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상호작용의 질을 높이고, 교사의 피로도를 낮춤으로 인해 전반적인 보육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사단법인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에 소속돼 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이란 부모의 출자로 운영되며 부모가 어린이집 운영의 많은 것을 맡는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10년 정도 교사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교사 대 아동 비율’이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마다 상황은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내가 있었던 어린이집에서는 만1세의 경우 교사 1명이 3명의 아이들을 맡거나 교사 1명과 보조교사 1명을 두고 4명의 아이들을 돌보았다. 나들이를 많이 다니는 어린이집의 특성상 나들이 안전을 위한 부모들과의 합의였고 교사회의 요청이었다. 만2세의 경우는 5명을 넘지 않았고 2반을 구성할 경우 8~9명을 2명의 교사가 맡아서 보육하였다.
교사 대 아동 비율로 인한 재정적 부담은 부모들이 나누었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들과 교사에게 필요한 지원이라고 모든 부모들이 동의했다. 교사는 여유가 있었으며 아이들도 교사의 여유를 배울 수 있었다.
모든 어린이집이 공동육아 어린이집처럼 지낼 수는 없다. 하지만 출생률이 낮아진 지금,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기는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적 과제이다.
예산 문제로 빠른 시행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예산이란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다. 인구 감소가 사회적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요즘. 영유아를 위한 지원의 폭을 넓힘으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제도를 구축하는 일은 사회 모두의 바람이지 않을까.
앞에 이야기했던 사건의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교사는 부모에게 연락해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고 부모는 아이가 무사히 돌아온 사실에 감사하고 늘 애써주시는 교사의 노고에 감사했다. 부모의 감사하다는 말에 교사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상황을 모두 보고받은 후 어떻게 해서든 ‘교사 대 아동 비율을 낮추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이 글은 그러한 다짐의 결과이다.
우리의 매일매일이 해피엔딩은 아니다. 생각하기 싫지만 상상할 수 있는 나쁜 결말은 얼마든지 있다. 오늘의 운이 좋았다고 내일도 운이 좋을 거라 생각할 수 없기에 마음이 급하다.
*이 글은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정책위원 최진이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최진이 님은 조합형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교사로 10여 년 일하다가 최근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위탁체인 국공립어린이집에서 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출처 : 베이비뉴스(https://www.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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