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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4 국민일보] ‘반한유총’ 동탄 부모들 ‘협동조합 유치원’으로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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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9-05-07 11:04 조회1,7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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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75734&code=11131300&cp=nv

 

‘반한유총’ 동탄 부모들 ‘협동조합 유치원’으로 뭉쳤다 

 

어린이들이 지난달 30일 경기도 오산에 위치한 육아공동체 ‘숲이랑 놀자’에서 바깥 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사립유치원총연합회 사태에 실망한 경기도 화성 동탄 지역 학부모들은 이곳에서 1년간 임시 유치원을 운영한 뒤 내년 협동조합 유치원을 열 예정이다. 오산=권현구 기자


아이들은 쉴 새 없이 뛰어다녔다. 종일 까르르 웃으며 폴짝폴짝 뛰고 떠드는 게 일과였다. 장난감을 두고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빵가루 반죽을 주물럭거리며 세상 가장 중요한 일인 듯 열중했다. 빗물이 고인 마당에 나와 땅 속 지렁이나 벌레와 인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조그만 얼굴 입가마다 미소가 가실 줄 몰랐다. 아이들은 서로를 오빠 형 누나 언니 대신 ‘라푼젤’ ‘헬리’ ‘금비’ 등 별명으로 불렀다. 스스로가 직접 붙인 이름이다. 엄마들도 서로를 ‘○○네 엄마’가 아닌, 아이가 지어준 이름으로 불렀다. 지난 26일 찾은 육아공동체 ‘숲이랑 놀자’의 모습은 여느 어린이집이나 유치원과는 확연히 달랐다.

아이와 부모를 이곳에 모이게 한 건 지난해 연말을 달궜던 ‘한유총(한국사립유치원총연합회) 사태’였다. 한유총의 본거지격인 경기도 동탄 지역 학부모들이 모여 결성한 ‘동탄유치원비상대책위원회(동탄비대위)’는 ‘반(反)한유총’ 전선의 선두에 서서 싸웠다. 안심하고 아이를 맡길 곳을 마련해야 한다는 동탄 지역 학부모의 고민이 ‘협동조합 유치원’ 설립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학부모들이 설립 과정에서 온전히 중심이 된 협동조합 유치원은 전국에서 사실상 처음 있는 시도다. 지난달 서울 노원구에서 ‘꿈동산아이유치원’이 부모협동형 유치원으로 문을 열었지만 이는 서울시교육청이 중심이 돼 기존 유치원의 운영 방식을 바꿔 다시 개원한 형태다.
 

어린이들이 지난달 30일 육아공동체 ‘숲이랑 놀자’에서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다. 오산=권현구 기자


‘숲이랑 놀자’는 내년 봄 협동조합 ‘아이가 행복한 유치원’(가칭)을 개원하기 전까지 1년간 운영되는 임시 육아공동체다. 동탄비대위 활동으로 이 지역 유치원 사이에서 소위 ‘블랙리스트’에 오른 학부모, 기존 유치원에 아이를 맡기고 싶지 않은 부모들이 의기투합했다. 현재 8가정의 2~6세 아이 11명이 있다. 각 가정의 부모는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나와 다른 부모들과 함께 종일 아이를 돌본다. 어떤 식으로 공동체를 운영할지는 부모들의 단톡방이나 모임에서 아이들의 의견까지 반영해 함께 정한다. ‘들꽃샘’으로 불리는 조리사 선생님을 채용하기로 한 것도, ‘아빠데이(Day)’를 만들어 엄마들에게 휴식을 주자고 한 것도 이렇게 나온 결정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고비가 많았다. 협동조합 유치원을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낸 건 동탄비대위 위원장을 맡았던 장성훈 협동조합 이사장이었다. 아이 둘을 돌보는 아내 대신 유치원 비리 사태 관련 학부모 모임에 나갔다가 우연찮게 맡은 위원장 자리였다. 위원장으로서 거의 유일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투쟁의 선두에 나섰지만 그도 해가 바뀌면서 고민에 빠졌다. 나이가 찬 첫째를 슬슬 유치원에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비대위 소속의 다른 학부모들에게 회유와 협박을 일삼던 사립유치원들이 그의 자녀를 흔쾌히 받아줄 리 만무했다. 이른바 ‘유치원 3법’이 패스트트랙으로 시행될 때쯤이면 아이는 이미 초등학교 입학이 가까워질 터였다.

그는 학부모들끼리 운영하는 협동조합 어린이집에서 힌트를 얻고 방안을 수소문했다. 퇴근하면 관련 자료를 찾느라 밤을 지새우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무엇보다 장소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았다. 이전까지 법적으로 사립유치원을 운영하려면 유치원 부지와 건물을 소유하고 있어야 가능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6일자로 협동조합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설을 임차해 유치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되면서 길이 열렸다.
 

급식을 먹고 물가에서 관찰 활동을 하는 것은 다른 유치원과 비슷하지만 이곳에서는 나이 구분 없이 배우는 연령통합 교육이 실시된다. 오산=권현구 기자


동탄비대위의 온라인 커뮤니티(카페)에 직접 만들어 올려둔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보고 경기도 화성시에서 연락이 왔다. 화성시는 동탄2 신도시 지역에 짓고 있던 이음터 건물 일부를 용도 변경해 임대해 주기로 했다. 부지를 소유한 경기도교육청도 협조했다. 협동조합 유치원 개원 시기는 건물 완공에 맞춰 내년 3월로 정했다. 개원 전까지 뜻이 맞는 부모들과 함께 공동육아를 하기로 한 게 지금 운영 중인 ‘숲이랑 놀자’다. 그와 아내는 육아공동체의 아이들에게 ‘왕자’와 ‘공주’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1년짜리 임시 공동육아지만 이를 준비하는 일도 퍽 어려웠다. 대부분 평범한 부모들은 모아놓은 목돈이 변변치 못했다. 각 가정이 청약통장과 적금을 깨 동탄과 오산시 사이 외곽 지역에 현재의 공동육아 터전을 마련했다. 문닫은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동화책을 사들이고, 각 가정에서 아이들이 함께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을 가져왔다. 엄마 아빠들이 함께 모여 벽지를 바르고, 직접 모래 1t을 사와서 마당에 부어 조그만 모래사장을 만들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제공하는 지원 프로그램은 마땅한 게 없었다. 화성시의 공동체 지원사업에서 약 1000만원을 지원받은 게 현재까지 받은 전부다. 경기도 사업에서는 아직 유치원이 정식 설립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정 최종 단계에서 탈락했다. 장 이사장은 “사실상 엄마 아빠들이 대부분 준비를 알아서 하고 있는 형편”이라면서 “지자체나 교육청이 좀 더 주도적으로 나서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류시석 경기도교육청 유아교육과장은 “교육과정 컨설팅 등 간접적인 지원은 할 수 있지만 현행 제도상 부모협동형 유치원이라고 해서 다른 사립유치원과 구분되는 별도의 지원을 하기가 아직은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금의 공동육아는 내년 협동조합 유치원 운영의 밑거름이 될 실험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을 포함해 사진작가, 간호사, 심리학 전공자 등 다채로운 전공의 부모들이 모인 덕에 다양한 면에서 교육방식을 논의할 수 있다. 대표적인 게 연령 구분 없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연령통합교육’이다. 공동체의 아이와 부모들은 서로를 위아래 구분 없이 별칭으로만 부른다. 아이들에게 ‘옹달샘’으로 불리는 한 엄마는 “지금 하고 있는 연령통합교육을 유치원에서도 하려고 한다”면서 “형이나 언니 등 위계 서열 없이 서로 존중해야 된다는 걸 먼저 가르친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앞서 공동육아를 시도한 다른 단체에서 자문을 구하고 자발적으로 교육을 받고 있다.
 

‘숲이랑 놀자’를 밖에서 바라본 모습. 오산=권현구 기자


부모들이 이처럼 열심인 데는 협동조합 유치원이 우리 유아교육 시장에 자극제가 될 것이란 기대가 담겨 있다. 새 유치원은 공금 유용 등 각종 비리로 얼룩진 일부 사립유치원들과 달리 운영 1년 뒤 모든 회계자료를 공개할 계획이다. 조합원에 가입할 모든 학부모와 교직원에게는 예산집행 의결권이 주어진다. 무리한 조기교육을 지양하는 한편 식대 절약 없이 친환경 급식을 제공한다. 보육교사들에게도 높은 급여수준과 연가, 안식월 등 여태까지 기존 사립유치원에서 보기 힘들었던 조건을 제시할 계획이다. 원비는 일반 사립유치원의 3분의 1 수준이다.

이원혁 협동조합 교육이사는 “유치원에 조합원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부모 교육이나 유아 교육을 무료로 진행할 계획”이라면서 “될수록 많은 이들이 우리가 유치원을 만든 취지나 교육관을 함께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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