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언론보도

home   >   자료실   >   언론보도

[2018-03-29 서울&] “선생님을 별명으로 불러요” ‘재미난학교’ 아이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9-01-09 13:29 조회1,205회 댓글0건

본문

http://www.seouland.com/arti/society/society_general/3240.html

 

20주년 맞은 삼각산재미난마을 학생과 교사 서로 친구처럼 호칭

 

152230110304_20180330.JPG
봄을 재촉하는 가랑비가 오락가락한 지난 19일 강북구 수유동 삼각산재미난학교의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들이 학교 마당에서 하늘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여기 ‘재미난마을’이 있다. 물론 정식 행정 지명은 아니다. 그런데도 동네에선 다들 “재미난마을”이라 한다. 이곳엔 ‘재미난학교’도, ‘재미난카페’도, ‘재미난도서관’도 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일대에 사는 주민들의 공동체인 ‘삼각산재미난마을’. 이 마을이 재미나다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마을에서 별칭을 부르고, 친구들 집에 놀러가서 재밌게 놀 수 있어요. 학교에서도 재밌게 놀고요. 재미난마을은 이름대로 엄청 재밌는 것 같아요.” 삼각산재미난학교(교장 조성진, 별칭 '월팽') 2학년 김용욱(8)군이 신나서 동네를 자랑한다.

우선, 학교. 초등 대안학교인 재미난학교엔 지금 47명의 어린이가 다닌다. 5학년생은 없고, 나머지 학년은 6명에서 13명까지다. 교사는 모두 10명인데, 이름 대신 별칭을 부른다. ‘보노, 콩, 알타리, 반디, 하늬, 아뜰(아름다운 뜰), 감자’ 등이다. 급식 교사는 ‘꽁보리’다.

 

152230110848_20180330.JPG
삼각산재미난학교

이성진(별칭 ‘백호’) 대표 교사는 “어른이라는 존재가 어렵지 않고, 아이 자신과 평등한 존재이기에 입학설명회 때 별칭을 부른다고 소개한다”며 “아무래도 1학년과 편입생이 어색해하는데, 아이가 ‘백호’라고 부르면 ‘왜’라고 편하게 되물어주니 학교에서 점차 불편을 느끼지 않더라”고 설명한다.

재미난학교는 교과 편성도 인가 학교와 판이하다. 시간표는 학기가 시작될 때 교사와 학생이 함께 만든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152230745071_20180330.JPG
재미난학교의 아이들


4학년의 시간표는 △월: 반난장, 모둠활동(독서, 목공), 우리모둠 △화: 마음, 몸, 학생회의 △수: 자기활동 △목: 산책, 역사, 미술 △금: 요리, 과학실험, 나들이로 구성돼 있다. 6학년은 △월: 요리/몸 활동 △화: 흙살림, 수학, 컴퓨터, 학생회의 △수: 자기활동 △목: 나니아 수업, 수학, 반난장 △금: 영화수업, 탐방수업, 부모님 제안 수업 등이다. 입시나 진학 위주의 정형화한 공부보다는 어울림, 놀이, 다양성을 중시한 수업들이다.

재밌는 것은 수요일 하루 전체를 차지하는 ‘자기활동’이다. 1~6학년 모든 학생은 이날 스스로 무엇을 할지 계획을 세워 실행한다. 마을 목공소에서 목공을 배우는 아이, 인근 농아학교에서 수화를 배우는 아이 등 관심사는 다양하다. 동아리 활동도 가능해, 탈것을 체험하는 동아리는 인솔 교사와 함께 시티버스, 경전철, 자기부상열차 등을 타고 돌아다닌다. 어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을 때려도’ 꾸지람은 없다.

올해 학교를 졸업하고 일반계 중학교에 진학한 이서진양의 어머니 홍문정(별칭 ‘호수’)씨는 “영어나 수학 같은 교과목에서 당장은 학습능력이 떨어질지 몰라도 6년 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고, 부모 이외의 많은 ‘어른 친구들’에게서 다양한 에너지를 받은 것을 아이도 나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152230110918_20180330.JPG
재미난학교의 아이들이 3월 초 ‘우리 학교, 우리 동네’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 왼쪽부터 정은혁(4학년)군, 박주언(2학년)군, 김어진(3학년)양, 길대로(2학년)군의 그림. 삼각산재미난학교 제공

둘째 마을. 이곳의 재미는 학교 울타리 너머 마을에도 있다. 재미난마을이 학교를 넉넉하게 품고 있다는 게 정확할지 모른다. 대표교사 백호는 “배움은 학교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마을이 학교와 함께 아이를 키운다”고 한다.

마을의 토대는 회원 140여 명으로 구성된 사단법인 ‘삼각산재미난마을’이다. 회원의 절반은 재학생 부모고, 나머지 절반은 졸업생 부모와 마을 주민이다. 재미난마을의 출발은 1998년 만든 공동육아협동조합 ‘꿈꾸는어린이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께 아이들을 키운 부모들은 초등학교 진학으로 모두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했고, 뜻을 모아 2003년 대안학교인 ‘재미난학교’의 문을 열었다.

그 뒤 학교가 울타리를 넘어 수유동 일대 지역과 만나게 된 것은, 2009년 생긴 친환경 농산물 식당 ‘재미난밥상’이 결정적 계기였다. 학부모와 교사 등 26명은 1억3천만원을 모아 식당을 열었다. 이상훈(별칭 ‘산나물’) 삼각산재미난마을 상임이사는 “맞벌이를 하는 학부모가 많아 아이들을 믿고 보낼 수 있는 밥집, 이모·고모라 부를 수 있는 분이 하는 밥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문을 연 것”이라며 “지역 주민들이 밥집을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와 주민이 연결되고, 관계망이 넓어졌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식당은 기대만큼 순항하지 못했다. 수유리 4·19민주묘지 주변에 대형 식당이 많아지면서 경영난을 겪었고, 2011년 초 남은 자산 6천만원을 배분하는 해산총회를 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산나물 상임이사는 “남은 자산을 나누지 말고 사단법인을 만들어 마을에 대한 공공성을 높이고 학교도 책임 있게 운영하자는 의견이 나와 뜻이 모였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70여 명의 발기인이 월 1만원씩 내는 사단법인이 탄생했다. 독립영화 <워낭소리>의 제작자인 고영재 피디가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회원들도 다들 별칭을 만들었다. 고 피디는 ‘느림보’고, 배우 권해효씨는 ‘잠만보’다.

 

152230110828_20180330.JPG
재미난카페

밥집은 재미난카페로 간판을 바꿨고, 지금은 마을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마을 주민 누구나 찾아와 카페에서 책을 읽는다. 책장을 공유하기로 하고 주민들이 기증한 책으로 채웠다. 편하게 와서 음식을 만들어 나눠먹는 마을부엌, 차를 마신 뒤 알아서 돈을 내는 마을무인카페이기도 하다. 공방과 타로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영화 감상도 이뤄진다. 자연스럽게 동네 엄마·아빠들의 ‘수다 공간’도 된다.

 

152230110795_20180330.JPG
마을목수공작단

카페뿐이 아니다. 동네엔 청소년과 어른들을 위한 재밋거리도 곳곳에 있다. 청년 목수와 아줌마 목수의 공동작업장인 ‘마을목수공작단’은 2011년부터 생활목공교실을 운영해, 이곳에서 주민 400여 명이 목공을 배웠다. 서점과 주점, 카페, 영화관, 공연장으로 동시에 쓰이는 ‘싸롱드비’는 아마추어리즘(B급)에 입각한 출판과 생활문화가 어우러진 이색 공간이다. 마을 엄마 아빠들의 소란스러운 아지트인 마을밴드 합주실, 제철 우리 농산물과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건강한 먹거리를 만드는 마을 셰프의 ‘요요의 부엌’, 마을극장 ‘수유리’도 있다.

 

152230110811_20180330.JPG
청소년 문화공동체 ‘품’

이런 공간을 이용해 주민들은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을 한다. 청소년들의 문화공동체인 ‘품’과 국내 유일의 청소년 전문극단 ‘진동’이 대표적이다. 어른들은 지난해에 서로 배우고 함께 나누는 마을배움터 ‘수유재’를 만들어 이곳에서 생활재도 만들고 댄스교실, 실밥교실 등도 연다.

 

152230110867_20180330.JPG
청소년극단 ‘진동’

이런 어울림 속에 재미난마을은 올해 창립 20돌을 맞았다. 공동육아협동조합을 시작할 때 한두 살배기였던 아기는 그새 청년으로 훌쩍 자랐다. 산나물 상임이사는 “지난 20년 동안 공동체 안에서 갈등과 의견 차이도 적지 않았지만, 다양한 동아리나 마을배움터 활동 등을 통해 서로 배우고 성장해온 경험, 마을학교와 마을카페 등을 함께 만들고 운영하며 겪어온 희로애락 등이 대화와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했다”고 밝혔다.

마을 회원이 된 지 아직 1년이 지나지 않은 남선진(별칭 ‘바람진’)씨는 “재미난마을은 내게 ‘품’이다. 나를 품어주는 곳, 품을 수 있는 곳이다. 그대로 안아 따뜻한 위로와 사랑을 느끼고, 스스로 돌아봄을 가능하게 하는 곳이다”라고 소개했다.

마을 회원이 아닌 주민들은 어떤 느낌일까? 윤경순씨는 “의식 있고 따뜻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추구하는 이웃사촌들”이라 했고, 김유신씨는 “일상의 지친 피로를 날려버리는, 숲속 보물찾기 같은 재밌는 놀이터”라고 평했다.

박종우(별칭 ‘버섯돌이’) 법인 이사장은 “주민들 스스로 뜻을 모으고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어 재미난마을의 지속가능성은 매우 크다고 본다”며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재미난마을 바깥에 있는 공동체와 연대해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가 널리 퍼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152230110886_20180330.JPG

 

152230110904_20180330.JPG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사진 삼각산재미난마을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