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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병반대]박노해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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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나리 (180.♡.211.63) 작성일03-03-23 23:27 조회3,6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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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력감에 몸부림치고 있는 벗들에게 올립니다

- 박노해 -

이 글은 길동무 (refarm.or.kr) 현장통신난에 보따리님께서 올린 글입니다.

치욕스럽고 비굴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죄.
너무도 편안하고 익숙한 일상이 죄가 되고 마는 현실입니다.

약탈을 위한 살육과 방화가 무자비하게 자행되고 있는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나라 대통령이 고심 끝에
살육과 방화를 지지하고 돕겠다는 선언을 한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너무도 심한 패배감과 무력감,
그 치욕스러움에 몸부림치는 벗들에게 올립니다.

나 혼자라는 무력감을 넘어서고 싶지만,
집단 속으로 들어가 군중이 되는 것 이외의 방법을 찾지 못한 벗들,
우리는 결국,
집단 속으로 스며듦으로써
이번에는 자발적으로
다시 무력한 존재로 전락하고 마는 경험을 반복해 왔습니다.

집회와 시위의 형태는 15년 전이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 努윱求?
확성기,
높은 무대,
오로지 앉아서 듣거나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상황.
답답함과 무력감,
무리지어 잡담을 나누거나 담배를 피우는 군중,
고성,
구호,
노래,
함성.
철저한 주인과 손님의 구조.
이 속에서 개인은 무력합니다.

자기가 무엇을 주장하는지 잃어버리고, 시들어 갑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단련하는 시간이 아니라,
그곳에 나와 있는 이유를 잃어가는 시간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출렁거리며 뜻을 잃어갑니다.

저는 이런 무력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소위 <1인 걷기-명상-시위>를 제안합니다.

군중으로 무리지어,
군중의 이름으로 학살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홀로 서서
평화의 이름으로,
온전한 자기의 이름으로 학살에 반대합시다.
평화를 염원하고, 요구하고, 실현합시다.

미국은 학살을 중단하라.
한국 정부는 학살에 동참하지 말라.
미국은 인간 살륙, 집단 학살을 당장 중단하라.

여럿, 더구나 무작위 대중 앞에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분명한 자기 주장은
집단을 이룬 무리? ?자기주장보다
훨씬 큰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침묵하면서
혼자서 시위를 합시다.
소리치지 않고
조용히 묵상하면서 천천히 걷는 것입니다.

오로지, 두 손에
학살 중단과 파병 반대를 요구하는 문구를 담은,
정성껏 만든 피켓이나 종이를 들고 조용히 걸읍시다.

소곤소곤 얘기하면 사람들은 가까이 와서 귀 기울입니다.
큰 소리로 말하면 멀찍이 떨어집니다.
확성기로 말하면(이것은 이미 폭력인데)
뜻과 소리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온몸이 온몸으로 온몸에게 말합니다.
온 마음이 온 마음으로 온 마음에게 말합니다.
온 정신이 온 정신으로 온 정신에게 말합니다.
온 넋이 온 넋으로 온 넋에게 말합니다.

소리치는 것보다 침묵하는 편이 좋습니다.
서 있는 것보다 걷는 편이 좋습니다.
여럿이 무리지어 걷는 것보다 따로따로 떨어져 혼자 걷는 편이 좋습니다.

마스크 따위로 얼굴을 가리지 않습니다.

지나치는 사람들을
가르치려는 듯이 무례하게 바라보지 않습니다.

사람! 들이 우리를, 나를 바라보도록,
편안히 바라볼 수 있도록 합시다.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길을 가다가 피켓을 들고 고요히 걷는 한 사람과 마주칩니다.
그런가 보다 하겠지요.

그러다가 또 한 사람을 마주치고 자꾸만 마주칩니다.
자꾸만 마주칩니다.

마주치면서
몹시 불편한, 보고 싶지 않은 현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각이 일어날 것입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학살이 자행되는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보다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편이 좋습니다.

너무 빨리 걸으면
우리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지나치는 사람이 있겠지요.
그러니 천천히 걷는 편이 좋습니다.

손에 들 피켓의 문구를 쓸 때,
전쟁이라는 말보다
학살, 살인, 약탈, 방화라는 말을 쓰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것이 본질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양쪽 어깨에 걸쳐 매는 가방을 매고 나가면 더 든든할 것입니다.
산에 오를 때, 아무것도 매지 않는 것보다,
뭔가를 매는 것이 더 든든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가방 속에는
마실 물, 넉넉한 양의 양초, 좋아하는 책과 사진 등을 넣어 두면
더욱 든든하리라 생각합니다.

대소변을 보거나 음식을 먹거나 생각한 바를 적을 때는
잠시 멈춰 서서 마음을 정리하고
손에 든 구호를 내려놓거나, 가리고, 잠시 멈추었다가
일상의 일을 처리하고 다시 돌아옵니다.

뭉치지 말고 흩어져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혼자 힘으로 학살에 반대한다는 것이
입증될 만큼
우리는 멀찍이 떨어져서 걸어야 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의 온 인격과 온 몸으로 외쳐야 합니다.

아는 사람을 만나도 서로의 익숙치 않은 모습에
웃거나, 소리내어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저 서로 지금의 모습을 존중하는 뜻으로
깊게 머리 숙여 인사하고 각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잊고, 우선 걸어야 합니다.

걸으면,
걸음이,
침묵과 명상이 우리에게
매 상황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줄 것입니다.

파병 甦?인준을 앞둔 지금,
우선, 여의도로, 국회의사당 주변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
걸어서 이곳으로 모일 수 있으면 좋겠지요.
이곳으로 다들 모여도
떨어져서, 걷거나 있어야 합니다.

진실로 혼자일 때,
진실로 침묵할 때,
우리는 가장 강한 힘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촛불을 들면 좋겠습니다.
그대로 밤을 새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멀찍이 떨어져서 홀로 밤을 새우면 좋겠습니다.

전경이 가로막으면, 시위자에서 시민으로 돌아갑니다.
누구라도 침묵하며 걷는 개인을 가로막을 수 없습니다.

경찰은 군중을 공격할 수 있을 뿐,
확고한 개인,
하나의 인격,
형, 동생, 누나, 아저씨, 할아버지를 공격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그들, 경찰을 공격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자신이 평화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 있어 본 적이 없는
침묵의 함성,
평화의 함성이 이 땅을 채우면,
그 힘으로 학살을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학살에 동참하는 만행은 막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처연한 하연달이 뜬 밤입니다.
날이 밝으면 여의도에서 만납시다.

*박노해님이 이라크로 떠나며! 쓰신 글을 동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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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로 떠나며
-2003년 3월 19일 박노해

3월 17일 새벽 3시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전쟁 선포를 TV로 지켜보는 순간,
온 몸에 엄습하는 무력감, 나 개인의 무력감, 詩의 무력감.
사랑의 무력감에 그저 먹먹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때 내 가슴의 작은 부르짖음을 들었습니다.
그래 가자, 이라크의 죽어가는 저 죄 없는 아이들 곁으로.
그러나 또 한구석에서는 융단 폭격의 두려움과 전장의 공포, 연고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맞아야 할지 모르는 죽음의 불안감이 나를 붙잡는 것이었습니다.
아침이 올 때까지 참으로 많은 생각이 오고 갔습니다.

세상은 '힘의 감동'을 믿지만 詩人은 '감동의 힘'을 믿는 존재입니다.
인간의 가슴을, 영혼을, 진실을, 우리들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믿고
거기에 가 닿고자 몸부림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었고 살아낸 만큼 쓰고 싶었고
쓰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싶었습니다

그 동안 이 부당하고 부도덕한 검! 은 전쟁을 막아 보자고 애써 왔습니다.
저녁 7시면 촛불을 켜고 함께 둘러앉아 '반전평화 마음 모으기'를 해왔고,
동의하기 힘든 구호가 나오기도 하는 반전집회에 우리 나눔문화 연구원들과
대학생 나눔문화 친구들과 함께 간절한 마음으로 참여해 왔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고
지상 최대의 무기를 총동원한 참혹한 전쟁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10년이 넘는 미국의 경제 봉쇄 속에서 매년 10만명이 넘는
이라크 아이들이 죽어갔습니다.
이라크 사람들은 이 모든 것이 석유 때문이라고, 이 땅에 석유가 있다는 것은 저주라고,
막대한 에너지 자원은 신의 축복이 아닌 신이 내린 저주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전쟁은 무서운 현실입니다.
그것은 바그다드 상공을 줌업으로 조준하는 전자게임도 아니고
부시와 후세인의 선악게임도 아니며 기왕이면 빨리 끝내야 할 경제 걸림돌도 아닙니다.
전쟁은 파괴와 살육의 현장입니다.
사랑스런 당신의 애인이, 퇴근길에 달려와 품에 안기던 내 아이가
무너진 벽돌 틈에서 피를 흘리는 현실입니다.
! 전쟁은 모든 人間을 미치게 만듭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를 이기기 위해 병사들은
더 광기 어린 폭력과 잔인성에 자신을 맡깁니다.
광기는 광기를 부르고, 그 폭력의 기운은 한 세대를 넘어서」
인간성에 끈질긴 영향을 미칩니다.
힘이 곧 여론이고 무장력이 곧 정의라면, 우리 아이들에게
올바른 삶의 원칙을 가르친다는 것은 허망한 일입니다.

무엇보다 바그다드를 처참하게 파괴한 미사일과 전투기들이
곧이어 한반도를 향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정부는 북한 핵의 평화적 해결을 약속 받는 대신
이라크전을 지지하는 부도덕한 거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부시의 전쟁을 지지하는 아시아 3개 나라 가운데 하나,
전세계 30여개 나라 가운데 하나가 KOREA입니다.
우리의 평화를 위해 남의 피눈물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 군대가 이라크전에 참전한다면 한반도 전쟁 위험이 닥쳤을 때
어떻게 국제 사회에 평화를 호소하고, 그 누가 앞장서서 「KOREA WAR Ⅱ」를
막아주겠습니까
나는 이라크전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못난 내 나라의 현실이 슬프고 부끄! 럽습니다.
나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라크인들?고통을 함께 하며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한국인들의 진정한 마음은 이렇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나누는 것임을 조용히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제 전쟁은 현실입니다.
우리는 부도덕한 전쟁 앞에 아무런 할 것이 없습니다.
나 개인의 무력감, 인간 정신의 무력감, 정의의 무력감에 휩싸여
우리는 TV나 바라보며 주가 영향이나 저울질하고 겉도는 삶의 이야기로 이 야만의 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라크전이 끝나고 한반도 전쟁이 다가온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생수와 라면박스 챙겨놓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인간을 믿습니다.
무기의 힘과 전쟁의 광기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개인들이지만
진정한 우리 마음의 힘을 신뢰합니다.
총과 폭탄으로도 바꿀 수 없는 우리 마음 깊은 곳의 힘,
사랑의 힘을 전쟁터에서 보여주고 싶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첨단 무기의 힘이 아니라
지극히 작고 부드러운 사랑임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무력한 사랑과 정의의 마음들이 함께 ! 하면 폭력과 전쟁조차
떨게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무기의 승리가 인간의 패배임을 입증해 보이고 싶습니다.

이 낯선 곳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전쟁의 공포와 고통에 울부짖는 아이들 곁에서
그것을 함께 느끼고 함께 있어 주는 것,
그것이 전쟁터로 달려나온 제 마음입니다.

서울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책임질 일들을 대강 마친 새벽,
텅 빈 나눔문화 공간에서 한참을 서있다 우리 연구원들 빈자리 하나하나를
둘러보았습니다.
고마운 사람들, 인간이 할 수 있는 극한까지 밀어가며 함께 밤새우고 토론하고 달리기하고 정진해 온 사람들.
그이들과 함께 해 온 순간들이 바람처럼 눈앞을 지나갔습니다.

선방 문을 여니 차를 마시며 이야기하던 벗들의 미소 띤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좁은 대학생 방을 들어가니 열정 가득한 얼굴들이 하나하나 안겨왔습니다.
소박한 밥상을 차리는 부엌문을 여니 정성 어린 손길들이 맛 좀 보라며 제 입에 나물을 넙죽 넣어주며 웃었습니다.
화장실을 돌아 텅 빈 나눔마당을 거닐었습니다. 함께 뒷풀이하며 서로! 우정을 나누고 세상사를 논하고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추던 다정한 얼굴들이 따뜻이 포옹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포럼실을 둘러보았습니다. 저마다 자신이 선 자리에서 양심과 원칙을 지키며 열심히 살다 달려와 촘촘히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진지한 눈빛을 빛내며 진정한 자기를 찾고 좋은 세상으로 가는 길을 함께 찾아나가던 좋은 벗들.

한 분 한 분 얼굴을 맞대며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포럼실을 나서는데 그만 눈물이 흘러내려서
미리 상의를 드리고 전화를 드리려 했지만
제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아 그마저 못하고 떠나온 걸 용서해 주십시오.

저는 아이도 없고 出家者 집안이고 직장도 홀가분한 편이라
여러 벗들의 마음을 대신해서 나섰다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임박한 전쟁을 앞두고, 이라크, 요르단, 이스라엘, 쿠웨이트로 가는
모든 항로와 길들이 끊겨서 전장으로 가는 길조차 험로입니다.
안식년으로 이스라엘에 계시던 '눈물의 제왕' 최창모 교수님이
요르단의 암만에서 이라크로 들어가는 길을 닦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괜히 위험에 끌어들인 건 아닌가 서로가 미? 훌末玖?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벗들.
행여 제가 미워하고 상처를 준 사람들이 있다면 이 시간 용서를 구합니다.
혹시 저에게 미움을 품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절 용서해 주시기 빕니다.
저의 잘못됨과 분노와 폭력을 돌아보며
내가 먼저 평화의 사람이 되고, 내 안에 평화의 축을 세워
평화를 나누다 쓰러지고 싶습니다.
전쟁을 반대하는 또 다른 전쟁이 아니라
어떤 폭력이 와도 평화의 마음과 행동으로 나아가고 싶습니다.
미움 없이 분노하고
냉소 없이 비판하고
폭력 없이 투쟁하고 싶습니다.

저 광기 어린 전쟁 앞에 우리는 무력할 수밖에 없지만
무력한 사랑의 힘으로 쓰러지고 또 일어나 쓰러지며
끈질기게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의 씨앗을 심어나가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벗들
유난히 겁 많고 나약한 저를 위해, 아직도 흔들리고 떨고 있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2003. 3. 19 프랑크푸르트에서
박노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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