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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3 한국일보] 공동체 치유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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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4-06-10 18:39 조회1,9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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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kookilbo.com/v/b6981d38554a40d79178d3e434ac185a


정병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신뢰관계의 붕괴가 빚은 참사라면 관계회복을 위해

모두가 기본적 약속을 지키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안산시의 한 장례식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일 이 삼층 식장마다 어린 학생 영정이 활짝 웃고 있었다. 빈소 입구에 ‘2학년 9반’, ‘2학년 10반’ 학급 팻말이 걸려 있었다. 이미 너무 오랜 시간 기다리고, 울고, 분노하다 지친 젊은 부모들이 넋 나간 얼굴로 이따금 찾아오는 조문객을 맞고 있었다. 분향대 위에는 양념치킨과 새우깡, 야구공이 놓여 있었다.


한 두 해 뒤면 대학 캠퍼스에서 만날 수도 있었을 아이들의 영정 앞에서 한 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었다. 마음껏 자게 할 걸, 마음껏 놀게 할 걸. 새벽부터 밤까지 입시준비에 시달리던 아이의 지난 삶이 안타까워하는 말이었다. 이 땅에 태어난 하나의 생명으로서 그 짧았던 삶이나마 마음껏 누리다 갔는가. 침몰하는 세월호의 객실만큼이나 답답했을 그 아이들의 교실이 떠올랐다. 생기발랄한 사춘기 아이들에게 기성세대들은 지금도 참으라고, 기다리라고 하고 있다. 0교시부터 야간자율학습까지, 대학에 갈 때까지.


그 동안 우리 기성세대는 많은 것을 성취했다. 전쟁과 폐허 속에서 의지와 집념으로 고도의 산업사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발전지상주의는 독재와 부정과 불법에 대해 눈감는 맹목적 효율중심사회를 만들었다. 개발을 통해 삶의 영역을 확대할수록 관리해야 할 위험도 커졌다. 바다를 막고, 고층건물을 짓고, 고속으로 달리고, 원자력 발전을 하면서 감당해야 할 위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우리가 고층 아파트에 살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타는 것은 그렇게 높아진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사람과 문화에 대한 근본적 믿음을 흔들어 놓는다. 허울뿐인 풍요의 위험한 실상을 드러내 보인다.

 

“사고는 사건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한다. 인류사회의 다양한 재난과 위험에 대해 연구하는 재난인류학자들의 말이다. 사고는 누군가가 한 순간 실수해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구조적 문제의 폭 넓은 진행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비슷한 사고가 연속적으로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위기와 재난은 바로 인류의 삶의 방식 안에 내재돼 있다. 따라서 인류사회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위기와 재난을 관리하는 방식뿐만이 아니라 그로 인한 피해와 상처를 치유하고 거듭나기 위한 문화적 장치도 마련해 두고 있다. 그것은 장례식과 같은 종교적 의례의 형식을 띠기도 하고, 혁명과 같은 사회적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위기와 재난이 공동체 구성원간의 기본적 신뢰관계가 무너져 발생한 것일 때는 치유의 초점도 하나의 공동체로서 손상된 관계의 회복을 위한 것이 된다. 기존의 사회구조나 지도체제가 공동체의 위기를 초래했을 때는 반구조적 저항을 통해 새로운 사회관계를 정립한다. 그 첫 단계는 구성원들이 집단적 일체감을 재확인하면서 공동체성 부활을 모색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각 사회에는 위기와 재난을 치유하고 극복하기 위한 그 나름의 문화 양식이 있다. 한국 사회에는 해외 학자들이 ‘찬란한 시민사회 전통’이라고 부르는 시위 문화 양식이 있다. 한 중학생의 죽음으로 촉발된 4월 혁명, 한 대학생의 죽음으로 시작된 6월 항쟁, 두 여학생의 죽음으로 시작된 촛불집회와 같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전기를 마련한 군중집회는 각 시대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공동체 위기에 대응한 자기 치유과정이자 재활운동이었다.

 

세월호 아이들의 희생으로 드러난 기존 사회체제의 허구와 불신 같은 어둠을 물리치기 위해 한국 사회는 다시 촛불을 들었다. 하나의 생명 공동체로서 진실과 신뢰가 되살아 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하여 촛불을 들었다. 함께 촛불을 든 우리가 다시 서로 믿을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오늘의 풍요를 만든 저돌적 발전지상주의에 대한 반성과 참회로부터 시작하여야 할 것이다. 아직 교실에 남아있는 우리 아이들을 위하여, 우리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 약속을 나부터 지키겠다는, 또 모두가 지키도록 하겠다는 결단과 행동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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