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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03 베이비뉴스-유보통합의 화두... 교육과 돌봄은 합해질 수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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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23-04-03 14:34 조회46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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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의 시선] 10. 유보통합 시대의 교육과 돌봄_상편
공동육아의 정신은 '내 아이'를 맡기거나 '남의 아이'를 보호해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데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동육아를 실천하고 있는 원장, 교사, 학부모가 직접 최근 보육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공동육아의 시선'이라는 기획을 진행합니다. 이 기획은 사단법인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과 함께합니다. -편집자 주 

유보통합이 준비되고 있다. 유보통합이 교육부 주관으로 간다고 하니 교육부가 가진 특성을 감안한 여러 우려도 나오고 있다. 그 중 가장 근본이 되는 화두는 교육 중심의 시각에 대한 것이다. '영유아기에 교육이란 무엇인가', '돌봄과 무엇이 다른가', '둘은 합해질 수 없는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고민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긴 내용이라 2회에 걸쳐 기고할 것이라 미리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현대사회의 위험은 개인의 고립에서 온다. 돌봄은 개인의 고립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고민돼야 한다. 그래서 제도적 필요 이외에 일상의 관계망을 복원하는 쪽으로도 고민돼야 한다. 이를 위해 돌봄을 받는 자의 참여가 중요하다. 아동 돌봄에서는 아동의 참여와 교사의 협동 정도 양육자의 참여 정도가 평가 기준에 추가돼야 한다.

유보통합의 방향에서 돌봄과 교육은 하나로 인식돼야 한다. 앞으로의 아동돌봄의 투명성 공공성의 기준은 이해관계자의 참여로 해결돼야 한다. 아동을 중심으로 돌보는 자들의 참여와 협동이 일어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영유아를 연령별로 나눌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필요한 영아 교육과 유아 교육을 배우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오늘은 돌봄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 현대 사회 위험은 고립에서 온다

많은 단체와 학계에서 재난 이후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고민하고 있다. 그 중 주목할 만한 의견으로 돌봄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하는 상상이 있다. 코로나19로 변화된 일상이 돌봄의 필요성을 더욱 부각시켰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의 사회적 위험은 무엇인가. 과잉된 것과 결핍된 것을 나눠보자.

과잉된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물건 경쟁 소비이고 결핍된 것은 관계 돌봄 협동이다. 여기에 아동에게는 과잉된 것에 학습이, 결핍된 것에 놀이를 추가해야 한다고 본다.

넘쳐나는 소비와 간접관계의 홍수, 도시화 산업화 이 속에서 개인화가 극심하게 진행되고 있다. 마을과 고향을 해체하고 있고 가족의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 한 세대 전과 비교하면 마을과 고향의 존재 여부, 형제의 숫자, 친척의 숫자, 이웃의 숫자가 현저히 줄었다. 4인 가족 중심이었던 것이 얼마 전이었는데 올해 통계에는 1인 가족이 40%에 육박한다는 행안부의 발표가 나왔다. 고독사도 이제는 일상 속에 존재하는 우려가 되고 있다. 사회적 안전망이 위험해진 것이 느껴진다.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된 개인화는 개인의 권한을 높였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면 개인이 가진 관계망을 없앴다. 개인의 고립이다.


사회적 고립도. ⓒ통계청

1인가구 추이와 1인가구 비중. ⓒ통계청
현대 사회의 위험의 모습은 ‘고립’으로 보인다. 노리나 허츠의 ’고립의 시대‘라는 책에서는 사회의 모든 현상의 기저에 고립이 있다고 본다. 고립은 개인의 소외감을 낳아 분노와 혐오를 만들어내고 내면의 폭력을 키워 극단적인 세력을 만들어낸다.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를 위협한다. 미래도 위협한다. 소속이 없는 젊은 세대의 고민은 정체성의 고민으로 드러나 내면의 공허함을 더한다. 이전 세대들은 자신이 속한 곳에 정체성을 기댈 수 있었다. 지금 세대에게는 그것을 기대할 소속이 없다. 마을도 고향도 신념도 없다. 각자도생의 사회라고 말한다.

그래서 고립된 사회를 넘어서려는 돌봄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고립이 돌봄의 존재를 없게 하기 때문이고 돌봄이 고립을 해결하기 때문이다.

돌봄 중심으로 사회를 재편하다는 상상은 그래서 힘을 받고 있다. 돌봄민주주의와 제도 개편은 지속적으로 주장해야 할 과제이다 ’돌봄에 대한 시각 변화와 정치 사회경제제도에 돌봄을 반영하고 돌봄과 노동이 양립할 수 있도록 사회경제제도로의 변화를 꾀하는 것, 모두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무언가 더 필요하다.


고립의 시대. ⓒ웅진지식하우스
◇ 돌봄= 보호가 아니다. 교육=학습이 아니다

그럼 돌봄의 영역을 살펴보자.

돌봄 문제의 해결은 한국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저출생 고령화문제 해결의 시작점도 될 것이다.

돌봄의 해결을 위해 제도적 보완도 중요하지만 돌보는 자와 돌봄을 받는 자의 상호작용, 참여가 중요하다. 이를 위해 두 가지 예를 들어보고자 한다.

한 가지는 교육을 책임지려는 자의 돌봄에 대한 무감각에 대한 예이다. 젊은 교사의 순진한 열정과 의지가 꺾이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아동돌봄 전문과정을 거친 교사가 열심히 공부해 열정에 가득 차 기관에 갔으나 마음대로 다뤄지지 않는 아이들에게 놀라고 실망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 지르는 교사, 관리와 통제 중심의 교사가 되어간다는 이야기다. 버릇없는 아이들과 지각없는 양육자를 탓하면서 말이다. 시기에 맞는 발달과제와 목표는 배웠어도 에너지 넘치고 개구진 아이들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교사가 아이들과의 일상에 돌봄을 감안했다면 어땠을까? 교사들은 아이들을 돌보는 노하우를 어디에서 배워야 할까?

둘째는 어떤 돌봄이어야 하는가이다. 일본의 동경 생활클럽생협을 방문했을 때 어르신 시설을 보면서 질문했었다. 이 시설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시설종사자의 답은 ‘도움이 필요하지 않으면 도와주지 않는다’라고 했다.

건강이 안 좋은 어르신들에게 가장 무서운 일은 넘어지는 일이다. 돌보는 자들에게 제일 쉬운 선택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불안을 덜기 위해 미리 도와주는 것이다. 반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불안하지만 담담하게 지켜봐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는 함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고 믿음을 주며 용기를 주는 일이다.

어르신 시설에서 두 번째 중요한 것은 개인의 존엄 보장을 위해 화장실 개수를 보장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돌보는 일이 시장화되고 돌보는 자가 지치고 무심해지면 제일 먼저 놓치는 것이 개인의 존엄이다. 돌봄을 받는 이들이 어떻게 느낄지를 외면하는 일이다.

아동 돌봄에서도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어린이는 무능력자로 취급받는다. 그리고 무능력자로 키워진다. 크면 다 할 거라고 믿었던 일들을 아이들은 커서도 하지 못했다. 배우지 못한 일상생활은 저절로 익혀지지 않는다. 넘어지면 혼자 일어나지 않고 어른을 쳐다보는 아이들, 식판을 들지 못하는 초등 입학생들, 혼자 수강신청을 하지 못하는 대학생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돌봄이 보호인가는 그래서 항상 유념해야 할 화두이다. 돌봄을 받는 주체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으면 보호가 되어버리기 쉽다. 돌봄을 받는 자의 존엄을 무시하게 된다. 돌봄을 받는 자의 의사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무엇이 아동에게 최상의 이익인가? 끝없이 물어야 돌봄을 받는 자의 권리를 해치지 않을 수 있다. 아동을 무능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이들이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학습하느라 일상생활을 익힐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육도 보호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미래를 보호하기 위해 학습이 들어갔을 것이다. 교육에서 돌봄이 빠져서 학습이 되어버렸다. 학습이외에 일상생할에 대한 돌봄이 가르침으로 필요하다고, 영유아기에는 돌봄이 곧 교육이라고 누가 말해야 했던 것일까? 전문가들이 때때로 말하는 것으로 될 것인가? 돌봄을 받는자가 스스로 말하게 해야 한다.

◇ 돌봄을 받는 자의 참여 

돌봄을 받는 자는 위치상 자기 의사를 전달하기 쉽지 않다. 보호받는 자로 위치 지워지면 더욱 그렇다.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일’이라는 당위에 맞서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돌봄을 받는 자의 참여를 합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참여가 보장되어야 의사를 밝힐 수 있다. 돌봄 기관의 경우 참여 정도를 평가해야 한다.

영유아의 경우 누리과정의 실천을 아동 중심으로 어떻게 얼마나 하고 있는지가 참여의 정도로 수치화해서 보여져야 한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에서 개발한 경기도 아동돌봄 사회적 경제 평가지표에는 돌봄 각 주체의 참여정도를 평가지표에 추가하려고 시도했다. 이것을 참고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야 한다. 가르치는 대상 보호하는 대상, 훈육의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주체성과 자립성을 가진 존재로 보아야 한다.

’백지인 상태의 아이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백지에 그림을 그려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

공동육아가 아이를 보는 시선이다.


’백지인 상태의 아이가 아니라 세상이라는 백지에 그림을 그려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 공동육아가 아이를 보는 시선이다. ⓒ베이비뉴스
◇ 돌봄은 관계로 만들어진다

또 하나, 지금 여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동육아는 항상 지금 여기에서 하고자 한다. 제도 확충 후가 아니라 여기서 해봐야 한다고 지금 우리가 행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여기서 고립을 해결하는 돌봄이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돌봄은 관계이고 사회적 안전망이란 관계망이다. 개인이 고립의 해결은 관계망의 복원으로 이뤄진다.

특히 아동기의 직접 관계의 부족이 사춘기 이후 여러 어려움을 준다. 중독 우울에 자해까지.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10~19세 소아청소년 사망 원인의 1위가 자살이다. 흔히 자살 문제는 사춘기 이후의 나이에서 보이는 문제로 생각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자살 생각을 시작한 경우가 많다. 모든 것이 자신을 대상화하는 시선에 대한 저항으로 보인다. 현대 사회의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존중받는 것이 아니라 학습해야 돈을 벌어야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사랑받는다. 자신의 본질보다 학습이 더 중요하고 사회적 시선이 더 중요해질 때 어려움이 나타난다. 어릴 때 길러진 관계의 근육이 있으면 그나마 극복지수가 높아진다. 작은 관계의 어려움에도 넘어져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줄어든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폴 스톨츠 박사는 "21세기는 지능지수나 감성지수보다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돌봄을 실현하기 위해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관계를 만들어놓는 것이다. 관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으면 돌봄이 생겨나고 몸과 마음이 튼튼한 아이들이 자란다. 현대 사회 아이들에게 학습이 들어가면서 현저히 부족해진 것은 관계와 놀이하는 시간이다. 관계와 놀이를 통해 배워야 할 것들을 간과하고 지나가고 있다. 놀고 관계해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고 싸워도 다시 화해하고 억울해도 극복하고 잊는 법을 배운다. 주양육자의 관계에서 받은 스트레스나 학습하며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한 세대 전에 존재했던 관계망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은 복원해야 한다. 그렇다면 고립의 문제를 해결할 현대사회의 최소한의 관계망은 어디까지인가? 스스로 표현할 수 없는 영유아들의 관계망은 무엇인가? 돌봄과 관계된 자들의 관계망이다. 그들의 참여이다. 그래서 북유럽에서는 양육자의 참여 정도로 공공성을 평가한다.

다음회에서는 돌보는 자의 참여와 유보통합 아동돌봄에서의 모습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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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베이비뉴스(https://www.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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