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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육자료집 내용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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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랑 작성일22-05-10 12:09 조회64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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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공동육아어린이집 4살 아이 엄마입니다.
부모교육 자료집을 읽으며 공동육아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 의아한 점이 있어서 문의드립니다.

33페이지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있는데, 걸음마기 유아를 "다분히 신체적인 물리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한다며 "가벼운 신체적인 벌"을 사용하라고 예시가 나와있습니다.
이러한 벌 뿐만 아니라 칭찬이나 예뻐하는 방법으로 원하는 행동을 "강화" 하라면서 매우 행동주의적인  양육 접근법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1) 아래의 내용의 저자가 누구인지, 2) 그리고 이러한 행동주의적 접근법이 공동육아에서 추구하는 철학인지 궁금합니다.
참고로 신입조합원교육에서는 루소의 자연주의 철학을 교육철학으로 한다고 안내 받았습니다.
답변 부탁드립니다.

-- 아래(원본) --
○ 어머니가 어느 정도 어떻게 통제하여야 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우선 걸음마기의 유아를 말로써만 설득시키려는 것은 적합하지 못하고 다분히 신체적인 물리적 방법, 즉 비언어적인 방법으로 다루어야 한다. 따라서 벌을 사용하게 되는데 가벼운 신체적인 벌(예를 들어 둔부를 가볍게 때린다든가 손바닥을 때린다든가 등의 행동)과 어머니의 무서운 표정, 그 행동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표정 또는 화난 음성으로 어머니가 허락하는 행동이 아님을 충분히 전할 수 있고 또 유아는 몸이 작은 만큼 신체적으로 압도당할 수 있다.
○ 또 필요한 신체적 제약뿐 아니라 걸음마기의 유아는 어머니의 표정을 살피고 주위로부터의 분위기를 살핌으로써 부모가 칭찬해 주고 장려해 주는 것을 알 수 있으므로 이러한 사회적인 칭찬과 예뻐하고 귀여워하는 방법으로써 원하는 행동을 강화해 줄 수 있다.
○ 이런 과정에서 부모들의 일관성 있는 태도가 필요한데 일관성이라 함은 어떤 행동을 다루는 데 있어서 부적합한 행동은 받아주지 않고 야단을 치면서 벌을 주며, 어떤 행동은 받아들이고 장려하고 좋은 행동임을 격려 해 주는 것이 그 행동이 일어날 때마다 되풀이되는 것을 의미하며 유아의 행동을 조절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건이 된다. 이런 일관성 있는 행동의 통제와 감독을 통해서 걸음마기의 아동에게는 그의 공격적인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동시에 자기주장과 의견을 성취하는 능력이 생긴다.

댓글목록

운영자님의 댓글

운영자 작성일

안녕하세요? 공동육아(로)에서 함께하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공동육아 사무국에서 일하는 달콤이라고 합니다. 

질문의 깊이가 있고 또 다른 함의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저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말씀드릴 수는 없을지라도 글을 써 봅니다.^^   

 

우선, 본 홈페이지에는 방대한 자료가 실려있는데 그것을 찾아서 보시고 또한 질문을 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감사와 더불어 감히, 공동육아가 전환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하더라도 미래가 밝을 거라는 전망을 해 봅니다.^^

 

궁금하신 부모교육 자료집은 이기범선생님의 오래전 교육자료입니다. 이기범선생님은 법인의 이사이기도 하시고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님이십니다.

타이틀만으로는 부족하리만큼 공동육아의 처음부터 지금까지 녹슬지 않은 성장을 뒷받침해 주신 교육철학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궁금해 하신 원문을 보면 '벌'이나 '강화'에 대해 행동주의를 언급하셨는데, 왜 이 문장과 단어가 궁금하셨는지가 저는 궁금해 졌습니다.

학문적 철학적 궁금함인지 육아를 하면서 생긴 궁금함인지가 우선은 알고 싶어 졌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바탕이 된 것이라면 이야기를 나눠보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학문적 궁금함이라면 이 글을 쓰신 이기범 선생님만이 질문에 답을 해 주실 수 있을 것도 같았구요.

 

사무국에 있으면 공동육아의 철학에 대한 질문을 참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자주 생각을 해 봅니다만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공동육아는 한 개인을 깊이, 성장시키는 육아!라는 어마어마한 세계를 이미 짊어지고 시작했고 그 안에서 개인이 아닌(개인도 어려운데..) 함께로서 행복해 보자는 나눔의 역사인 것 같습니다. 

"공동육아적이야"라고 어느시기에는 참 모두가 공감을 했을지라도 "공동육아적이지 않아"라는 말로 때로는 서로를 나눠놓기도 하는 상황이지만 이 또한 우리의 역사안에 함께 어우러져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답을 드릴 수는 없을거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송구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서로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짧으니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요? 그렇게 스스로 답을 찾고 편안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기도 하고, 공동육아에 있는 수많은 선생님들의 말씀과 남겨놓은 유산들을 해석하면서 "그땐그랬지"를 뒤늦게 하기 보다 이렇게 찾아내고 의문하여 몸에 맞는 성찰로 가져 올 수 있다면 어쩌면 개인의 성장을 넘어 어딘가에 잘 쓰일, 도움이 될 것 같기에 부족하나마 남겨 봅니다. 

 

대답이 많이 부족하므로 02-323-0520 으로 연락한번 주세요(수요일이 더 유리합니다.^^)